교황청 역사상 첫 비(非)이탈리아 출신으로 제2백64대 교황에 오른 것이 78년. 그후 역대 누구보다도 ‘행동하는 교황’으로 일해온 그는 올 5월21일자로 금세기 최장수 재임 교황 기록을 경신했다.
78세의 나이에도 교황의 하루는 한결같다. 새벽 5시반에 일어나 기도와 묵상을 하고 7시에 미사를 봉헌한 뒤 오전 알현시간 전까지 각종 서한과 문서를 작성한다. 점심식사 후 30분가량 낮잠을 잔 후 기도와 묵상, 산책 겸 운동을 하고 역사 철학 관련 책을 주로 읽는다.취침은 자정무렵.
구부정한 허리에 오랫동안 괴롭혀온 파킨슨씨병 등 병마때문일까. 교황청 밖에선 후임 교황 자리를 놓고 입방아를 찧고 있지만, 전세계 성도들에 대한 바오로2세의 영향력은 동유럽 공산장벽 붕괴에 기여했던 90년대초에 못잖게 여전히 절대적이다.
‘베드로의 후계자’로 불리는 교황은 전세계 가톨릭 신도의 ‘아버지(Papa)’이자 으뜸 사제. 이탈리아 수석주교 겸 로마관구의 관구장 대주교이며 바티칸국의 국가원수이기도 하다.
그같은 중심적 자리에 걸맞게 바오로2세는 20년간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다른 종교에도 ‘진리의 씨앗’이 있음을 선언했고,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로마시내의 한 유태교회당에서 기도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교회의 비난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등 과학과 신앙의 화해를 촉구했으며, 인터넷으로 바티칸 미사를 생중계하는 등 첨단기술 사회에 발맞춰 나아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부여하는 문제와 콘돔피임및 낙태에 대해서는 여전히 ‘절대 불가’라는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공산블럭의 붕괴에도 바오로2세는 큰 영향을 미쳤다.
교황이 된 후 첫 해외나들이가 79년의 고국 폴란드 방문. 폴란드정부는 구 소련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카롤 보이티와’(바오로2세의 속명)의 모국방문 의지를 꺾을수 없었다.
폴란드에 도착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땅에 입맞춘 이래 외국 방문때마다 되풀이되는 그의 ‘대지에의 키스’는 그 땅에 발딛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의 표현으로 상징되고 있다.
재임20년간 교황이 방문한 나라는 1백18개국. 거리상으론 지구를 28바퀴나 돌수 있는 1백12만여㎞다. 하지만 방문을 간절히 소망해온 이스라엘은 아직 찾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못박힌 ‘거룩한 성지(聖地)’에 바오로2세가 입 맞출날이 올 것인지….
〈이기홍·강수진기자〉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