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行 앞둔 日대중문화계]『다된 밥에 코 빠뜨릴라?』

  • 입력 1998년 10월 16일 19시 32분


‘초읽기’에 들어간 한국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본격개방을 바라보고 있는 일본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정중동(靜中動)’이다.

일본은 오랜 숙원이었던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개방에 공개적인 언급은 가급적 자제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한국민의 착잡한 감정을 잘 알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현단계에서 들뜬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한국민을 자극, 역효과를 거둔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물밑 움직임은 활발하다. 일본 음반업계나 영화계 TV프로덕션 등은 김대중정부 출범후 한국의 일본문화개방을 기정사실로 간주, 개방에 대비한 한국진출 시나리오를 내부적으로 마련해 놓은 상태다. 경제적 타산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일본 관련업계의 시각은 ‘단기적으로는 불투명, 중장기적으로는 낙관’.

현실적으로더 열을 올리는 곳은 일본 업계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수입업체다. 벌써부터 일본의 대형 음반사나 영화사에는 독점공급이나 합작계약을 맺자는 한국으로부터의 연락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문화개방으로 결국 일본업체가 상당한 수익을 올릴수 있다는 데는 일본내에서도 이견이 거의 없다.

한 일본 음반사 관계자는 “조용필과 계은숙의 노래가 일본인을 사로잡은 이상으로 일본가수들의 노래가 한국인 팬들을 파고들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본격적인 개방정책 이전에 일본에서 소설과 영화로 히트한 ‘실락원’이 한국에 상륙하고 일본영화를 그대로 베끼다시피한 ‘백한번째 프로포즈’가 한국에서 히트한 점을 지적했다.

일본대중문화의 한국진출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재일한국인 문화평론가 L씨는 “일본 대중문화의 한국진출은 한꺼번에 확 몰려가는 식이 아니라 서서히, 그것도 한국사회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과거 동남아시장 공략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80년대 초부터 본격화한 일본가요의 홍콩진출과정은 이렇다. 일본 프로덕션은 처음에는 일본 톱가수들의 히트곡을 모은 옴니버스 앨범을 극히 싼 가격으로 홍콩시장에 내놓았다. 다음해에는 그렇게 소개된 가수들의 히트곡 특집을 홍콩가수 앨범보다 싸게 판 뒤, 이듬해는 현지 앨범보다 비싸게 내놓았다. 이런 방법으로 홍콩팬들을 확보한 일본은 그 다음부터는 오리지널 판을 현지 판매가보다 월등히 비싼 일본판매가격으로 내놓았지만 날개돋힌 듯이 팔려나갔다. 또 영화는 먼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 등 예술성 높은 작품부터 풀어 “일본영화가 수준이 높다”는 인식을 심어준뒤 흥행성 있는 영화, 특히 젊은 스타들이 출연하는 영화를 집중적으로 수출할 가능성이 높다.

개방초기에는 한국가수와의 합작공연이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다큐멘터리 수출로 친근감을 심어주는 전략도 예상된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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