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공격과 빌 클린턴대통령에 대한 탄핵추진에 대한 엇갈린 논쟁과 결정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라크 공격에 대한 러시아 중국의 반발을 진화하느라 분주했다. 뉴욕과 클리블랜드 등 미 주요도시에서 벌어진 시민들의 공습반대시위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미 의회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라크 공습 이틀째인 이날 오전 하원은 본회의를 열어 이라크 공격에 대한 초당적 지지결의안을 만장일치에 가까운 4백17대 5로 통과시켰다.
전날까지만 해도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을 회피하기 위해 이라크 공격을 갑작스레 결정했다고 주장하던 공화당이 공습을 지지하는 여론에 밀려 후퇴한 듯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오후1시 탄핵본회의 소집시기를 일임받은 공화당의 보브 리빙스턴 하원의장내정자가 18일 탄핵본회의를 소집하겠다고 게파트 민주당 원내총무에게 전격 통보했다.
의회는 발칵 뒤집혔다. 이라크 공습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군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을 탄핵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려 시도한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못한 초강수였다.
게파트 총무는 “우리 청년들이 이라크에서 위험한 작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에 탄핵을 논의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공화당을 규탄했다. 적을 앞두고 미국의 국론이 분열되는 순간이었다. 이같은 분열은 미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라고 미 언론들은 평가했다.
리빙스턴 의장내정자는 “이라크 공습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원이 헌법이 부여한 의무를 계속 연기할 수 없다”면서 “군인들이 전투를 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리빙스턴이 이처럼 강경하게 돌변한 이유가 뭘까.
의문을 푸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의회전문지인 롤콜(roll call)이 이날 인터넷에 리빙스턴이 혼외정사를 가진 사실을 시인했으며 사임할 의사를 갖고 있다고 올렸다.
이날 저녁 공화당소속 하원의원 총회가 긴급소집됐다. 리빙스턴은 혼외정사 사실을 고백하면서 “내 운명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다”고 동료의원의 뜻을 물었다. 사태의 반전에 의아해하던 공화당의원들은 그의 연설이 끝나자 기립박수로 지지를 확인했다.
민주 공화 양당간의 국론분열은 정면충돌로 향해 가게 됐다. 공화당의원들은 클린턴 대통령을 잡으려다 깅그리치 의장이 의원직까지 내놓으며 정계를 떠난 데 이어 리빙스턴 의장내정자까지 궁지에 몰리자 백악관의 배후조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격앙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전날 클린턴 대통령의 이라크 공습결정을 비난했다가 세찬 여론의 반발을 산 트렌트 로트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도 자신의 발언이 와전됐다고 한발 빼는 동시에 탄핵문제에서 더욱 공세적으로 나왔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된다 해도 여전히 상원 재판에서 탄핵안이 확정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1백명의 상원의원중 3분의 2인 67명이 동의해야 확정되는데 공화당의원은 55명이며 아직까지 이탈한 민주당의원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