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프랑스]외국인유학생 佛 떠나는 까닭

  • 입력 1998년 12월 20일 20시 17분


라니냐 현상으로 유럽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요즘 프랑스의 일부 외국인 유학생들은 체류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새벽잠을 설친다. 주로 파리의 동북쪽이나 동남쪽 교외에 거주하는 학생들이다.이 지역의 관할 경찰서 앞마당에서는 매일같이 어둠속에서 추위에 떨며 서 있는 1백여명의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대기표를 나누어주면 부근의 카페나 집에 들어가 몸을 녹이다 돌아올 수도 있으련만 굳이 줄을 세워 대여섯시간 ‘벌을 세우는’ 심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우울한 정경은 현재 프랑스가 안고 있는 외국인 정책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90년대 내내 지속된 불경기로 프랑스는 실업률이 12%를 넘는 등 실업이 가장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치러진 각종 선거 때마다좌우파모두설득력 있는 실업자 구제 방안을 내세우는 일에 역점을 두어 왔다. 결국 현재의 리오넬 조스팽 정부는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눠 갖자는 방침을 정하고 7월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주당 35시간 노동제가 2000년부터 전면 실시될 예정이다.

고실업 현상이 지속되자 ‘프랑스인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극우파 국민전선이 국민에게 넓은 지지를 받게 되었다. 이들은 외국인 취업자 3백만명을 쫓아내면 3백만명의 실업자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고 선동해 장기간실업상태에있는프랑스인들의 마음을움직이고있다.국민전선은 각종 선거에서 15%정도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외국인 중에도 주로 알제리 등 아랍계 사람들에게 극우파의 공격의 화살이 겨냥돼 있는데 이들은 주로 60년대 파리시내를 관통하는 도시고속전철 공사를 위한 노동력으로 프랑스의 필요에 의해 들어온 사람들이다. 외국인들을 두둔하는 쪽은 오히려 좌파진영이다. 이들은 이미 오랫동안 프랑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외국인들과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아무튼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필요가 줄어든 지금 프랑스는 엄격한 이민정책을 펴고 있다. 문제는 이민자들과 유학생들을 구분하지 않고 외국인문제라는 한 범주에 넣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이민을 규제하기 위한 각종 조치의 덫에 유학생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걸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에 언급한 파리 교외는 저소득층 집중 거주지역이어서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이때문에 관할 경찰은 비자 신청자들을 반쯤은 범죄인 다루 듯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곳에 거처를 구한 유학생들도 외국인 이민자들과 한묶음으로 취급받는다. 몇해전 이 지역에서 발생한 한국인 여학생 구금사건은 아직도 프랑스 한인사회에서 잊을 수 없는 일로 남아있다. 사소한 서류미비로 인해 어린 여학생이 불법체류자로 체포돼 재판에 회부된 사건이었다.

이러한 취급에 대한 외국인 유학생들의 분노와 실망은 마침내 수치로 드러났다. 며칠 전 ‘피가로’지에 게재된 기사에 의하면 지난 10년동안 적지 않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프랑스를 떠났다. 88년에는 프랑스 학생의 12.5%였던 외국인 유학생들이 98년에는 8.5%인 12만1천여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같은 감소현상의 첫번째 원인으로 피가로지는 비자 연장 등 행정절차의 까다로움을 꼽았다. 유학생들이 프랑스를 기피해 미국이나 영국으로 간다면 프랑스의 앞날에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김제완(파리교민시니문 「오니바」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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