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르토정권은 지난해 시작된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개혁을 회피하다가 결국 살인적인 물가고를 초래, 시민의 저항에 부닥쳐 무너졌다.
32년간 자바왕국을 철권통치해온 독재자가 하야하기까지 인도네시아 5월혁명에서는 시위대 2백여명이 숨지고 3천여명이 다치는 희생이 있었다.
수하르토의 몰락은 ‘시장의 힘’이 개발독재를 종식시킨 측면도 강하다. 국가주도형 성장시스템이 국제자본의 가공할 힘 앞에 무너진 양상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총체적인 정치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하야 당일 위란토국방장관은 ‘군은 수하르토와 그의 가족의 안전과 명예를 보호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수하르토와 일족은 검찰의 조사를 받는 등 권력무상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수하르토의 구속과 조기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 및 야당의 거듭된 시위로 인도네시아 정정은 여전히 불안하고 불투명하다.
19세 때 네덜란드 식민지군 하사관으로 군인이 된 수하르토는 65년 군부 쿠데타를 진압하면서 실세로 떠오른 후 이듬해 수카르노 초대대통령을 반강제로 축출해 권력을 장악했다.
한때 제삼세계 연합체인 ‘77그룹’의 지도자였던 그와 그의 일가는 이 나라의 주요 기업을 장악, 이른바 ‘인도네시아주식회사’를 독점경영했다. 이는 ‘정실자본주의(Cronycapitalism)’의 전형으로 서방학자들은 이것이 아시아적 가치의 병폐이며 경제위기의 주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올 초부터의 거센 권력이양 요구에도 불구하고 노욕을 이기지 못하고 3월 7선 연임을 강행, 결국 제 무덤을 파고 말았다.
〈허승호기자〉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