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시장에서 최근 달러화 가치는 올 7월과 비교해 일본 엔화 대비 17%, 독일 마르크화 대비 8%씩 각각 떨어졌다.
더욱이 10월초 이후 달러가치 하락이 본격화됐는데도 미국 재무부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달러화를 떠받치려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강한 달러론’의 주창자인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도 이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미국경제 호황의 상징이었던 ‘강한 달러’가 힘을 잃는 것은 왜일까.
전문가들은 “지금까지는 강한 달러가 미 경제에 도움이 됐지만 이제는 강한 달러가 미국 실물경제에 부담이 돼 이를 포기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강한 달러’의 배경〓95년에 잠시 하강조짐을 보였던 미국경제가 이듬해 보란 듯이 일어선 것은 세계 유동자본이 대거 미국에 유입된데 따른 달러화의 강세와 뉴욕증시의 다우존스공업지수 급상승이라는 ‘쌍두마차’ 덕분이었다.
달러강세와 주가상승은 장기간 지속돼온 미국 내수경기 호조와 맞물려 주가상승→개인소득 증대→소비촉진→기업이익 확대→주가상승의 ‘선순환’을 낳았다.
이 때문에 97년 이후 미 재무부의 최대 관심사는 달러강세 유지 및 주가 방어였다.
▼상황의 변화〓올 8월 러시아의 대외채무지불유예(모라토리엄)사태 이후 미국의 대형헤지펀드(국제적 단기투기자본)가파산위기를 맞았다.
그 여파로 신흥시장에 대한 자금회수 움직임이 이어져 남미의 외환위기를 불러왔고 미 주가의 ‘거품’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다우지수는 급락조짐을 보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FRB가 올 9월말 이후 세차례에 걸쳐 금리를 낮추자 달러자산의 수익률 하락과 함께 달러화 가치가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금리인하는 미 정부가 달러강세정책을 포기하고 내수경기 유지를 통해 주가방어에 전념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뜻이다.
▼유러화와의 관련〓99년 1월 출범하는 유럽단일통화 유러(Euro)는 미국이 강한 달러를 유지할 수 없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유일 기축통화인 달러를 믿고 경상수지적자 누적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올해만 1천6백5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경상적자는 매번 국채발행으로 메워왔다.
그러나 유러의 출범에 따른 ‘2극 통화체제’로 미국은 대외경제부문에도 신경을 쓰게 됐다. 특히 경상적자의 축소를 위해서는 ‘약한 달러’를 용인할 수밖에 없게 됐다.
〈허승호기자〉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