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잇단 「風」에 시달린 사회
올해는 북풍(北風) 세풍(稅風) 총풍(銃風)이 휩쓸고 지나갔다.
검찰이 국세청의 대선자금 모금사건을 수사하자 야당은 DJ(김대중대통령)대선자금 공개요구로 맞서 밀고당기는 세풍이 시작.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원내총무는 “신랑이 과거를 물으니 신부도 과거를 물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여권을 공박.
이어 판문점 총격요청설이 터지자 여야는 총풍공방전을 전개. 한나라당 김영선(金映宣)의원이 “검찰은 드라마센터”라고 비판하자 박순용(朴舜用)서울지검장은 “이번 연속극의 주인공이 누군지는 드라마가 끝나봐야 알 것”이라고 반격.
총풍사건으로 감청이 문제가 되자 국정감사에선 “도청 감청 때문에 만나서 얘기하는 경우가 늘어 교통체증의 원인이 되고 있다”라는 말까지 등장.
고액과외사건의 주범 김영은(金榮殷)은 “그동안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인맥을 만들어 놓았는데 9∼11월 대목을 앞두고 붙잡혀 들어와 안타깝다”며 한숨.
▼ 정치권 사정-내각제 논란
정권교체…정치권 사정(司正)…내각제논란 등. 올해도 어김없이 정계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올해초 정권교체에 대해 “꿈인가 생시인가”며 감격해 했다. 이에 앞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은 퇴임직전인 2월 청와대를 찾아온 한 측근에게 “83년 전두환정권에 대해 단식투쟁을 하면서 차라리 죽었어야 했다. 그때 죽었더라면 요즘처럼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소회를 토로.
올 봄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후보가 대구 달성 보선에서 승리하자 한나라당 김호일(金浩一)의원은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이겼듯이 고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산 김대중대통령을 이겼다”고 기염.
개혁의 발걸음이 더디다는 비판에 김대통령은 “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일갈. 하지만 김중권(金重權)청와대비서실장은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
현 정권의 햇볕정책도 논란의 대상. 김대통령은 7월1일 인촌기념강좌에서 “악한균을 죽이는 것은 햇볕”이라고 햇볕론을 옹호. 이에 한나라당 이상희(李相羲)정책위의장은 “미생물중에는 햇볕을 싫어하는 것도 있고 좋아하는 것도 있다”고 비꼬기도.
세밑 김총리는 내각제 개헌약속과 관련해 “참을 때까지 참다가 안되면 몽니를 부리겠다”며 내각제에의 집념을 내비쳤다.
▼ 北도발-사고에 시달린 軍
새 정부의 ‘햇볕정책’은 소떼방북과 금강산 관광을 가능케했다.
정주영(鄭周永)현대명예회장은 방북에 앞서 “아버님의 소 판돈 70원을 갖고 가출했던 제가 이제 그 한마리의 소를 1천마리로 키워, 그 빚을 갚으러 고향산천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러나 대북 화해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잠수정 침투가 잇따르자 “남쪽 사람들은 ‘유람선’타고 금강산 구경가고 북쪽 사람들은 ‘잠수정’타고 설악산 구경오는 것 아니냐(한 실향민 자녀)”는 비아냥을 낳았다.
군부대의 사고가 잇따르자 국방부내에서조차 “지장(智將)덕장(德將)용장(勇將)보다 부대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 운이 좋거나 복이 많은 운장(運將)과 복장(福將)이 승진을 잘할 것 같다(국방부 보도장교)”는 자조가 나왔다.
북한이 기아선상에서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개발 의혹이 있는 지하시설 건설에 몰두하자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사람이 마음속에 품은 생각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단지 그 그림자만 알 뿐이다. 그러나 북한사람들의 경우 그 그림자조차 알 수 없다”며 경계.
경제난으로 실의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 박세리선수의 등장은 신선한 청량제였다.
데뷔 첫해에 2개의 메이저대회를 포함, 파죽지세로 4승을 거두며 ‘골프계의 신델렐라’로 떠오른 그에 대해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박세리의 운동자질과 놀랄 만한 침착성은 위대한 골프선수 이상”(짐 리츠 미국LPGA 커미셔너, 워싱턴포스트지 박세리 특집기사에서)이라고 격찬했다.
‘골프 신동’으로 불리던 타이거 우즈의 상대적 열세를 빗대 “세리 인(In), 우즈 아웃(Out)”이란 말도 유행했으며 삼성물산 세리팀 관계자는 “박세리가 너무 빨리 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반면 98프랑스월드컵에서의 참패와 차범근감독의 축구계 비난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차감독의 사퇴로 이어졌다. 시민들은 “월드컵 참패로 가장 타격을 입은 이는 정몽준과 차범근이 아니라 ‘한국인’이다”라며 자조했다.
〈고미석·신연수기자〉mskoh119@donga.com
▼ 경제위기-구조조정 한파
올해 한국사회를 규정한 단어는 단연‘IMF’.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화이트칼라들은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희망퇴직에도 희망이 없다(김광식현대자동차노조위원장)”고 비관했다. 간신히 정리해고를 면한 사원들도 “비 오는 날 쓸어도 쓸리지 않는, 도로에 붙은 낙엽처럼 살고 싶은 것이 요즘 샐러리맨의 마음 아니겠느냐(대기업사원)”고 심정을 토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취업할 곳을 잃은 대학4년생들은 “사(四)학년이 아니라 사(死)학년”이라고 자조했다.
은행과 기업에 대한 정부의 구조조정 요구와 관련해 기업들은 “대기업이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앞서가는 집단이기 때문(김우중대우회장)”이라거나 “어떻게 키운 기업인데…(구본준 LG반도체 사장, 현대―LG반도체 부문 빅딜원칙 합의후)”라며 불만을 토로. 그러나 정부가 공약했던 행정 및 정치개혁은 지지부진하자 “우리는 뼈를 깎고 있는데 공무원은 털도 안깎고 있다(한 재벌그룹직원)”는 비판을 받았다.
▼ 지구촌 화두 「경제-섹스」
올해 지구촌의 화두(話頭)는 세계를 휩쓴 ‘경제위기’였다.
자크 아탈리 전유럽개발은행총재는 새해 벽두 “최근의 금융시장은 화재가 예고된 방에서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것과 같다”며 아시아 금융위기가 세계경제에 미칠 파란을 예고했다.
‘아시아적 가치’를 주창해온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개혁프로그램에 대해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야수 자본주의’”라고 비난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도 많은 말을 낳았다.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창간자 휴 헤프너는 “섹스 스캔들은 성혁명의 승리이며 그를 성추문의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자들은 섹스의 적”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는 전세계의 ‘고개숙인 남성’에 대한 복음이었다. 미 성인잡지 펜트하우스의 편집장 보르 구치온은 “비아그라는 남성의 남성다움을 억제해온 페미니즘에 맞서는 해방수단”이라고 극찬했다.
〈황유성기자〉ys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