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뒤젠베르크 ECB총재는 앞으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총재와 함께 세계 통화질서를 이끌 쌍두마차 역할을 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ECB는 상당한 정착기간을 거쳐야 중앙은행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선 ECB는 현재 참여국의 통화주권을 ‘합의에 의해 넘겨받은’ 상태일 뿐이라는데서 FRB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FRB는 이미 미국내 50개 주의 확고한 정치적 통합위에 통화신용정책권을 장악하고 있다. 반면 유로랜드는 참여국 하나가 ‘유로랜드 이탈’을 선언할 경우 강제로 저지할 방법이 없는 상태다.
양 기관의 의사결정기구의 구성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FRB의 경우 그린스펀 등 7인의 상임이사들과 미국내 12개 지역연방은행 총재들 중 5명으로 구성된 12인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정책결정을 하고 있다.
반면 ECB는 뒤젠베르크 등 6인의 집행이사와 11개 회원국 중앙은행 총재가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본부 이사보다는 지역대표 이사의 숫자가 더 많아 회원국간 의견일치가 이뤄져야 정책결정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ECB는 긴급한 경제위기가 발생하거나 회원국간 이해가 엇갈리는 이슈가 떠오를 경우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다.
ECB의 경우 중앙은행에 대한 정치적 압력도 만만찮다.
유럽연합(EU)의 사회민주주의정당 집권 11개국의 재무장관들은 작년 11월 “ECB에 대해 성장과 고용문제를 고려하면서 물가안정 목표를 추구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라’는 요구로 금리인하를 거부해온 ECB의 독립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그로부터 40일후인 12월3일 유로 참여국들은 금리를 3%로 내렸다.
이밖에 독일과 프랑스가 ECB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과 견제를 계속하고 있어 이 또한 중앙은행의 위상과 기능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허승호기자〉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