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관료들 잇단 美 비난발언 파문

  • 입력 1999년 1월 5일 20시 06분


일본 법무상이 4일 “군대도 가질 수 없는 헌법이라니…”라며 일본 헌법의 개정불가 배경을 미국탓으로 돌렸다. 그는 또 미국의 경제정책을 강력히 비난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미스터 엔’이라 불리는 일본 대장성 차관은 “올해 국제경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국 증권시장의 거품”이라고 말해 미국의 신경을 건드렸다.

이같은 발언은 새해 벽두부터 파문을 일으킬 전망이다.

▽법무상의 헌법개정 주장〓나카무라 쇼자부로(中村正三郎·64·사진)법무상은 4일 법무성 신년하례식에서 헌법개정문제와 관련해 “일본인은 연합군으로부터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받지 못했고 자위(自衛)도 안될 뿐만 아니라 군대를 가질 수 없는 헌법을 만들었다”며 “헌법개정도 되지 않아 안달해야 하는 변고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시스템에 대해 “미국이 말하는 자유시장경제라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타국이 이기려고 하면 원자탄과 미사일을 날리는 자유일 뿐이다”라며 “슈퍼 301조를 내놓아 사람을 위협하는 것은 결코 자유경쟁이 아니다”고 비난했다.

나카무라 법무상은 또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공습을 비판한 뒤 “미국이 제조기술로 일본에 대항할 수 없는 것을 알고 금융으로 일본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 대해 제임스 루빈 미 국무부 대변인은 5일 “발언의 내용을 주의깊게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야당들은 즉각 그의 파면을 요구하고 나섰다.

파문이 번지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는 5일 각료간담회에서 “현 내각은 헌법을 준수하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법무상의 진의를 듣고 싶다”고 진화에 나섰다.

나카무라 법무상도 5일 “국회의원이라는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말 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문제가 심각해지자 “표현이 적절하지 못해 사과하고 싶다”며 꼬리를 내렸다.

중의원 7선의 중진으로 환경청장관 대장성차관 당재정부회회장 등 주로 경제분야에서 일해온 온건한 인물인 그의 이번 발언은 개인의 소신이 아니라 자민당내 보수파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장성 재무관의 미국 우려〓사카키바라 에이스케(?原英資) 일본 대장성 재무관(차관급)은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회견에서 “올해 국제경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국 주식시장의 거품”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확산되기 시작한 세계금융위기는 올해에도 계속될 것”이라며 “나의 가장 큰 관심은 지나치게 높은 미국의 주가로 미국경제는 이미 거품 상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제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그는 또 “저축률에 비해 소비가 많은 나라는 주가가 일단 하락하면 경제가 침체하게 마련”이라고 경고하고 “경기부양 조치와 금리 추가인하가 올해 미국의 주요 과제로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발언은 최근 미국과 일본이 △무역균형 △기축통화문제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는 시점에 터져나와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전망이다.

〈도쿄〓윤상삼·권순활특파원〉yoon33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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