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선의원이지만 이처럼 무명에 가까운 그가 일약 하원의장이 된 것은 스캔들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시대에 스캔들과는 관계가 없을 법한 서민적 용모를 지닌데다 거부감이나 경쟁의식 같은 긴장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원만한 품성 때문.
해스터트는 16년간의 고교 교사직을 마감하고 81년 주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할 때, 86년 연방 하원에 첫 진출할 때 모두 현역 의원이 와병으로 의석을 내놓자 주위의 천거로 마지못해 출마해 의원직을 승계했다.
물론 그가 무욕의 정치만으로 오늘에 이른 것은 아니다. 그의 또다른 무기는 남이 도저히 따르기 힘든 신실. 휘튼대 재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친구가 베트남전에서 전사하자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기일마다 미시간주에 있는 친구의 부모님을 찾고 있다.
해스터트는 거창한 이념보다는 보건 식품 환경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실용적 해답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자. 이 때문에 해스터트 시대의 공화당은 보수강경의 뉴트 깅리치 의장시대와 달리 실용적이고 타협적인 경향을 보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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