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충격에도 뼈가 부러지고 발육이 부진한 불완전 골생성증이란 선천성 질병으로 생전의 그는 키 90㎝, 몸무게 23㎏에 불과했다.
네살 이후부터 그의 몸은 성장이 중지됐지만 그는 그때부터 음악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과 불굴의 집념으로 재즈계의 거장으로 성장했다.
프랑스 오랑주 지방의 이탈리아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기타리스트인 아버지와 베이시스트인 형과 함께 네 살때부터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8년동안 클래식음악을 공부한 뒤 재즈로 방향을 전환했다.
15세 때 드럼주자로 정식 데뷔한 뒤 19세때 ‘미셸 페트루치아니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첫 재즈앨범을 냈으며 같은 해 ‘시간과의 데이트’란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내면서 재즈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걷지도 못하고 의자에 앉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연주를 하려면 몸을 피아노에 고정시키는 특수 장치가 필요했다. 이런 불편한 상항에서 불구하고 그는 프랑스에서 열린 재즈페스티벌에 2백회 이상 참여했다. 전국 순회 연주회도 수없이 가졌다.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든지, 아니면 잠이나 자라”는 아버지의 독려에 따라 끊임없이 자기를 연마한 까닭이었다.
유럽 음악가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음반사인 블루노트사와 7개의 음반을 내기도 했다. 특히 그가 직접 작곡하고 연주한 ‘미셸이 페트루치아니를 연주하다’란 음반과 웨인 쇼터 및 짐 홀과 함께 공연한 ‘파워 오브 3’는 대히트작이 돼 돈도 벌었다.
지난해 12월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바티칸에서 열린 콘서트가 그의 마지막 무대였다.
르 몽드지는 7일자 오비추어리에서 그를 ‘웃고 마시고 키스하고 체스를 즐기고 밤을 사랑한 음악가’라고 평가하며 애도했다.
〈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