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대중문화 동반시대/대하 사극] KBS PD 김재형

  • 입력 1999년 1월 10일 19시 33분


프리랜서PD 김재형(63)을 따라가면 우리 사극이 보인다.

그는 61년 KBS개국준비요원으로 입사한 뒤 38년간 3백50여편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TV사극의 효시인 ‘국토만리’(63년)를 비롯해 ‘별당아씨’ ‘사모곡’ ‘한명회’ ‘왕도’ ‘용의 눈물’등 50여편의 사극이 그의 손을 거쳤다.

KBS가 사극에 대하드라마라는 타이틀을 붙이면서 주말 밤시간대로 편성시간을 고정한 것이 81년. 일회적 작업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재해석하고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 기획의도였다.

그러나 ‘개국’를 시작으로 ‘삼국기’ ‘찬란한 여명’ 등 대하드라마는 매년 1,2편씩 방영됐지만 시청률이 낮아 존폐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90년대들어 시청률이 낮을 때면 사극 장르가 아예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것도 나 때문에….”

김재형PD의 말. 사실이 그랬다. 80년대초까지 사극은 TV연속극의 대명사였지만 이후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의상과 소품비 등으로 돈을 물쓰듯 쓰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긴장감 넘치는 현실과의 교감이 빠진 채 고리타분한 그들만의 ‘옛날 이야기’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96년 11월부터 98년5월까지 1백59회 방영된 KBS 1TV의 ‘대하드라마―용의 눈물’는 사극에 대한 이같은 시각을 일거에 바로잡았다.

제작비 1백60억원과 연기자 3백여명(엑스트라 2만2천여명) 등 투입된 물량도 엄청났지만 그 결과 역시 그때까지의 대하드라마를 뛰어넘었다. 방영 후반 50%를 웃도는 경이적인 시청률은 물론 97년 대통령선거와 맞물려 역대 사극중 최고의 각광을 받았다.

‘용의 눈물’의 방송사적 의미는 사극의 문화상품으로서의 존재가치를 확인시켰다는 점이다. 결정적인 성공의 비법은 역사적 진실과 현실 사이에 다리를 놓는 ‘드라마적 상상력’이었다. “사극의 맛은 원래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도 현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때 우러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사극의 이 ‘무기’가 우리 현대사의 억압적 정치 환경과 방송사의 수동적 구조 때문에 오랜동안 ‘거세’됐습니다.”

그러나 후속작 ‘왕과 비’는 ‘용의 눈물’에 훨씬 못미치는 완성도와 반응에 머물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다. 대권(大權)을 향한 욕망과 인간적 갈등 등 이전 작품과 비슷한 주제때문일까.

서강대 최창섭교수(신문방송학)는 “시청률이 우선되는 방송 풍토에서 시청률 부침에 관계없이 대하사극을 지켜온 KBS의 자세는 평가받을 만하다”면서 “특히 ‘용의 눈물’은 특정인물을 미화시킨다는 우려도 제기됐지만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며 역사드라마를 정착시켰다”고 평가했다.

사극에 젊음을 바쳐온 김PD와 스가노CP는 같은 연출관을 갖고 있다. 사극을 오락기능 위주의 다른 드라마와 구분하는 것이다. 사극의 ‘소명론’이다.

“재미있어야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종종 미화(美化)나 왜곡의 시비를 낳기도 하지만 모름지기 작가와 연출자는 역사적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기해야 합니다.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우는 역할도 공영방송이 해야할 일 아닐까요.”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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