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금융위기는 그 불똥이 이미 멕시코 칠레 등 인근 중남미로 튄 데 이어 미국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대외채무 불이행(디폴트)위기는 동유럽과 아시아 등 신흥시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인도를 한꺼번에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러시아는 국가가 보유한 달러가 바닥나 빚을 갚지 못하는 사실상의 국가부도상태에 이르고 있다.
이에 비해 브라질은 금융위기가 국내 정파간의 정치적 힘겨루기로 증폭되면서 국가신용이 위협받는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
러시아는 최근 몇달간 채무상환의무를 여러 차례 이행하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는 당초 “올해 갚아야 할 채무액 1백75억달러 중 95억달러를 갚고 나머지는 상환일정을 재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으나 12일 다시 후퇴해 “올해 대외채무액 중 46억달러만 갚을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제통화기금(IMF)의 신규 지원 없이는 갚기 힘든 상태. 대부분의 서유럽 정부 및 은행들은 이미 러시아 채권을 회수불능자금으로 분류하고 있다.
러시아의 디폴트가 확실해지면 러시아 법인과 개인의 해외자산 차압 등이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언론에서는 “일부 채권자들이 러시아의 해외자산을 동결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 유럽경제정책센터의 피터 베스틴은 “디폴트사태가 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러시아의 미래는 IMF 등의 신규차관 지원여부와 채권국들의 부채상환일정 재조정 여부에 달려 있으나 서방에서는 경제개혁의 미비를 들어 추가지원을 꺼리고 있어 디폴트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채권자들이 세계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수 있는 디폴트로까지 상황을 몰고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리 마슬류코프 러시아 제1부총리는 IMF와 세계은행에 추가차관을 요청하기 위해 13일 미국으로 떠났다. 또 IMF대표단은 다음주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채무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현재 러시아 정부는 밀린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루블화 가치의 폭락을 각오하고 새 화폐를 계속 찍고 있다. 이에 따라 통화량은 작년 12월28일 1천9백90억루블(약 88억달러)에서 5일에는 2천73억루블(약 92억달러)로 4.2%나 늘어났다.
이같은 통화량 증가는 앞으로 물가앙등, 루블화 평가절하 가속, 외환위기 심화 등을 불러와 상황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브라질 ▼
미국은 12일 금융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브라질 정부에 대한 지지를 거듭 확인하고 페르난도 엔리카 카르도수 브라질대통령에게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하라”고 촉구했다.
브라질은 인구(1억6천만명)가 남미 전체의 절반을 넘으며 국내총생산(GDP)도 작년 8천억달러로 남미의 40%를 차지하는 ‘남미경제의 기둥’이다.
브라질이 무너질 경우 중남미가 결딴나고 ‘세계경제의 기관차’인 미국경제도 흔들릴 수 밖에 없어 세계경제에 지진을 일으키게 된다.
카르도수 대통령도 12일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레알화 평가절하설은 사실무근”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브라질 27개 주정부 중 17개 주정부 지사들은 이날 회의를 갖고 카르도수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시했다.
중앙정부에 대한 채무상환을 거부함으로써 위기에 불을 붙인 미나스 제라이스주에 대한 제재조치도 본격화됐다.
중앙정부는 연방세 분배금 지급을 동결한데 이어 12일 미나스 제라이스주의 중앙은행 예치금중 절반 가량을 인출중단시켰다.
앞으로 브라질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응책으로는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 선언 △외채 재협상 △평가절하 등이 떠오르고 있다.
브라질은 87년 모라토리엄으로 극심한 신뢰붕괴와 경제불황을 겪은 적이 있는데다 카르도수대통령도 ‘외채상환 의무 존중’을 공언하고 있어 모라토리엄으로 갈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카르도수대통령은 앞으로 미나스 제라이스주를 굴복시키기 위해 각종 압력을 가하는 한편 IMF와의 재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은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IMF에 약속한 ‘재정적자폭의 축소 및 외환보유고 3백80억달러 유지’ 등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황이 악화돼 외화유출이 심해질 경우 밖으로 빠져나가는 달러를 붙잡기 위해 평가절하를 단행하고 그래도 안될 경우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이다.
〈허승호기자·외신종합〉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