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개방될 상업영화, 대중음악, TV방송은 일본의 경쟁력이 강하지 않은 분야다. 고작해야 비주류의 일각을 차지할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일본대중문화의 힘을 얕보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분야는 이미 충분히 들어와 있다. 새삼스럽게 개방 운운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출판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은 국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일본영화의 실패를 분하게 여기는 것은 영화가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문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대중문화중 어느 분야를 한국사람에게 접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일본인들은 영화(32%), TV드라마(18%), 가요와 팝송(16%), 연극(15%)을 주로 꼽았다(1월3일자 동아일보). 영화처럼 보여주고 싶은 ‘고급문화’보다 게임같이 보여주기 싫은 ‘저급문화’가 해외에서 더욱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창피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식자층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1세기 대중문화의 중심은 영상산업이고 그 핵심은 영화가 아니라 게임산업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게임산업은 영화산업의 규모를 능가하고 있다. 일본 게임업계의 연간 매출액은 할리우드의 그것에 필적한다. 더욱이 영화는 성숙산업이지만 게임은 앞으로도 고도성장이 기대되는 신흥산업이다. 영화에는 수동적인 수용만이 있지만 게임은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소비자 주권시대와 어울리기 때문이다.
‘D의 식탁’처럼 쌍방향 영화를 실현한 게임, ‘바이오 해저드’처럼 공포영화를 방불케하는 게임,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처럼 대하소설을 연상시키는 게임, ‘비트 매니아’처럼 손쉽게 테크노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게임 등 선구적인 게임들이 무서운 속도로 장르를 파괴하며 게임산업을 대중문화산업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있다. 일본의 게임업계는 전 세계를 석권하고 있지만 우리의 게임산업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영화를 두고 한가하게 자존심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김지룡<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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