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 ‘일본식 경영’이 경쟁력 강화의 참고서가 되다시피 하고 일본기업의 컬럼비아 영화사나 록펠러센터 빌딩 매입 등으로 “미국건물과 정신이 일본에 팔리고 있다”는 개탄이 미국 내에서 나온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1백80도 역전된 느낌이다.
일본경제의 거품이 사라지면서 몰려온 경기침체와 금융기관의 막대한 부실채권은 금융기관과 기업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엔화가치 및 주가폭락으로 ‘일본발 세계경제공황’에 대한 우려까지 나왔다.
일본식 경영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일본 기업과 금융기관이 최근 합병을 통한 몸집키우기와 특화전략 수립 등에 부심하는 것은 기존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나 구미 일각에서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과의 경제전쟁에서 이미 졌다”는 ‘패전론’마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끝났다’는 시각은 과연 타당한가. 일본사회를 보면서 이런 견해가 어쩌면 반쪽만의 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일본 금융산업의 불안이 쉽게 해결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경제를 오늘까지 끌고온 제조업체들은 구조조정을 한 뒤 지금도 위축되지 않고 묵묵히 전세계를 누비며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지금은 약점만 잔뜩 부각되고 있지만 디지털과 비디오카메라, 전자 스틸 카메라 등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일본상품이 줄을 잇는 데서 볼 수 있듯 제조업종의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일본기업 경쟁력의 한 원천인 ‘친밀고소(親密高小)’전략도 여전히 유효하다.‘친밀고소’란 ‘소비자가 친밀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친’‘소비자끼리의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을 중개하는 밀’ ‘고도의 지식과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고’ ‘간단하고 소형제품을 만들어내는 소’를 말한다.
불황 속에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기업의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상당수의 대형 슈퍼마켓은 소비세(5%) 환원세일을 하고 있으며 모든 물건을 1백엔(약 1천원)에 파는 ‘1백엔 전문점’도 등장해 인기를 얻고 있다. 몇 엔이라도 싼 곳을 찾는 주부들의 절약정신을 노린 아이디어다. 일본경제의 골칫거리인 금융산업이 회생하는 데는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일본의 금융산업은 언젠가는 ‘글로벌시대의 금융논리’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것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일본은 막대한 외환보유액과 대외자산으로 금융산업 회생에 쏟아부을 수 있는 ‘판돈’이 든든하다는 강점도 갖고 있다. ‘주식회사 일본’이 다시 위력을 찾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일본은 올해를 ‘1999년’보다 ‘헤이세이(平成·일본의 현재연호) 11년’으로 즐겨부른다. 일본인에게 11이란 숫자는 행운을 의미한다. 일본경제는 ‘아시아경제의 기관차’로 비유된다. 지난해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과 일본경제가 올해 함께 회복세로 돌아서기를 기원한다.
한영균(대신증권 도쿄사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