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미스 프랑스 1위 입상자는 서인도제도의 과들루프 출신이었다. 프랑스에서는 가끔 이렇게 해외영토나 자치령 출신 유색 인종이 미인대표로 선발되고 있다.
프랑스는 다양성의 나라이다.
98년 월드컵 축구에서 우승한 주최국 프랑스 축구팀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구성원의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출전한 22명의 대표선수 중 프랑스 국내 출신은 두 세명에 불과했다.
20세기 프랑스 현대건축 중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파리 퐁피두센터, 신도시 라 데팡스의 그랑 타르시, 아랍문화센터 등은 프랑스 건축가의 손에 의해 설계된 작품이 아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설계에 의해 프랑스의 걸작으로 남겨졌을 따름이다. 프랑스는 후손에 남길 작품을 전 세계적으로 공모해서 구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훌륭한 것, 좋은 것을 만드는 데 굳이 창조자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포도주와 식도락의 나라 프랑스에서 맛볼 수 없는 세계의 요리는 없다고 해도 별로 지나친 말이 아니다. 파리에는 전세계 모든 종류의 요리를 갖춘 식당들이 성업 중이다.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프랑스에서 와서 활발하게 기량을 펴고 전수한다.
프랑스에서 어떤 정치인이 프랑스인을 위한 내국인 우대 정책을 이야기한다면 ‘극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 쉽다. ‘열린 프랑스’ ‘관용의 프랑스’를 위해 프랑스 우월주의의 발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으로 치부당한다.
이런 프랑스에도 몸을 사리는 분야가 있다. 세계의 다양성을 흡수해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데 익숙한 프랑스가 한결같이 거부하는 것은 바로 영어이다. 프랑스어는 문화 예술분야와 세계 무대에서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불쌍한 위치로 전락하고 있다. 프랑스의 고민은 바로 외국 저질문화의 무차별 유입으로 국내문화가 질식되지 않을까, 영어라는 괴물에 프랑스어가 겁탈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많은 세계인들이 프랑스로 찾아와서 프랑스를 배우면서 은연중에 자기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이곳에 흘려놓고 간다. 프랑스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식도락이나 삶의 방식을 맛보기 위해…. 여러 목적으로 프랑스 국경을 넘나드는 외국인이 지난해 7천만명이 넘었다. 프랑스인들은 자기 집에 앉아서 외국인들이 가져다주는 이국 풍물을 즐기면서 이국적인 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권 이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혹자는 프랑스를 여행하려면 세 개의 보따리를 가져와야 한다고 말한다. ‘돈’ ‘지식’ ‘인내’의 보따리다. 프랑스를 찾아온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 세 보따리를 다 털리고 만다. 다양성의 용광로가 프랑스에 들어온 모든 외국 풍물과 재산을 함께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이춘건(佛 만트래블 여행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