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방미의원단을 만난 웬디 셔먼 미국무장관자문관은 비상대응책이 적용되는 한계선을 ‘94년 핵위기 때와 같은 상황’이라고 예시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전격 탈퇴하고 영변원자로를 가동했던 94년 핵위기때와 같은 상황이라면 미국이 북한영변지역에 대한‘북폭(北暴)’을 검토했다고 알려진 바로 그 상황을 의미한다. 물론 미국의 비상대응책이 꼭 이라크사태 때와 같은 군사적 조치를 의미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미정상회담 직전인 작년 5월과 북한이 중거리 미사일실험을 강행한 직후인 작년 10월,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에게 새로운 대북접근책을 건의한 미 대외관계위원회(CFR)의 보고서가 상정한 강경대응책도 기존 제네바합의 및 인도적 차원의 지원 외에는 일체의 대북 지원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94년의 북폭론도 다소 잘못 알려진 감이 없지 않다. 백악관에서 전쟁대책위가 열리고 미 국방부가 내부적으로 한때 군사조치를 조심스럽게 검토했지만 당시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현 대북정책조정관)은 95년 1월 미상원 청문회에서 “심사숙고 끝에 대통령에게 그같은 선택을 권고하지 않았다”고 밝혔었다. 대북 경제제재와 그에 따른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비해 한반도에 군사력 증강을 병행하자고 건의했지 ‘선제공격’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금창리 지하핵의혹시설문제가 결렬보다는 해결쪽으로 가고 있어 ‘비상대응책’이 군사적 조치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한국정부의 시각이다. 하지만 북한이 미사일을 재발사했을 경우에 대한 미국과 일본 정부의 우려가 워낙 심각해 상황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