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3일 미전향장기수와 이미 출소한 빨치산출신 노인들의 송환을 요구한 것은 그들 역시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좌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3일 고위급 정치회담을 제의한 지 20일만에 남북간 대화가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북송’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나름대로 남북간 접촉을 넓혀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요구사항을 정부가 아무 조건없이 수용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북한이 이산가족문제에 성의를 보이거나 국군포로 납북자의 송환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경우 여론의 반대 때문에 송환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한국전쟁의 미송환 국군포로는 1만9천여명, 그 이후 납북억류자는 4백47명으로 각각 파악하고 있으나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상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냉전구조 해체’작업의 일환으로 언젠가는 남북간에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미전향장기수 북송문제가 제기된 시점에 함께 논의하는 게 적절하다는 견해가 많다.
따라서 김대중(金大中)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정부가 이번에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북한측 조치를 이끌어 내는 조건으로 미전향장기수 등의 북송을 단행한다면 지난해 금강산관광으로 실효성이 입증된 대북정책엔 더욱 힘이 붙을 전망이다. 이 경우 남북관계가 바야흐로 화해국면으로 진입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북한이 성의있는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국민 설득력을 상실, 향후 행로가 매우 순탄치 않을 가능성도 크다.
아무튼 북한의 잇단 대화제스처를 놓치지 않고 이를 남북관계의 해빙으로 이어가기 위해선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에 입각한 보다 정교한 부분전술을 구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