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더타임스는 26일 이같은 사실을 전했다. 국민에게 제2차세계대전 때 독일의 침공에 맞선 파르티잔의 저항정신을 되살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공습에 맞서자고 호소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유고는 파르티잔의 활약 덕택에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독일이 세르비아를 침공한 것은 1941년 4월. 독일군은 그해 7월 친위대원 2명이 살해되자 세르비아의 민간인 36명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점령군 사령관은 병사 1명이 살해되면 보복으로 50∼1백명을 처형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파르티잔의 활동을 막지는 못했다.
파르티잔 활동은 독일군 주력부대가 모스크바로 향할 무렵 가장 활기를 띠었다. 파르티잔 활동을 했던 부크 드라스코비치 세르비아 부총리는 소설 ‘칼’에서 “칼은 우리의 상징이요 문장(紋章)이다. 칼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의 눈은 불타오른다”고 적고 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