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아인혼 국무부 비확산담당 부차관보를 대표로 한 미국 협상단은 북한의 장창천 외무성 미주국 부국장이 이끄는 북측 협상단과 치열한 설전을 벌였지만 어느 것 하나 ‘딱 부러진’확답을 받아내지 못했다.
미대표단이 이번 회담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미사일 추가 발사실험 중단에 대한 약속도 북측의 명백한 거부로 벽에 부닥쳤다.
아인혼 대표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별도 면담까지 가졌지만 북측의 태도는 완강했다.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 계속되는 한 미사일 개발에 대해서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말만 듣고 미국 대표단은 철수해야 했다.
양측의 공방 내용도 이전의 범주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미사일 발사실험을 할 경우 북한의 국가 이익에 중대한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미측의 경고에 북측은 ‘주권의 문제’라고 일축했다. 미사일 수출을 금지하라는 미국측의 요구에 대해서는 ‘보상금’카드로 대응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나 우리 정부가 미사일 협상의 전망을 반드시 절망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미사일에 관한 한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공언해온 북측이 ‘빠른 시일 내에 5차회담을 개최한다’는 데 합의한 것은 모순된 행동. 정부 당국자는 “1년에 한차례 열리던 미사일 회담을 올들어 두번씩이나 수용한 것을 보면 북측이 과거보다 좀 더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미사일 협상에 대한 북측의 이같은 태도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회담 시점이 ‘페리 보고서’가 작성되기 직전인데다 5월말까지는 미의회에서 대북 중유지원자금이 통과돼야 하기 때문에 북측도 무조건 강수를 쓸 수는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북측이 추가로 미사일 발사실험을 강행한다면 한 미 일 3국이 준비중인 대북 포용정책은 공염불이 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이 당분간 미사일 추가발사를 자제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측이 미사일협상에 순순히 응할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미사일 개발에 관한 한 국제사회의 어떠한 규범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북한으로서는 ‘미사일 카드’로 미 일측과 최대한 흥정을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달부터 본격화될 대북 포괄협상의 의제에 미사일 협상이 포함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미사일 협상만 따로 떼어 협상을 진행하기보다 북핵문제와 경제제재 완화, 대미 국교정상화 문제 등 현안을 하나의 ‘보따리’에 담아 일괄타결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