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학살현장 비디오 공개]뒷머리 총쏴 1백명 학살

  • 입력 1999년 4월 5일 09시 10분


눈을 뜬 채 숨진 사람, 머리가 터져 널브러져 있는 시체, 불에 탄 손과 발….영국 BBC방송은 3일 유고 세르비아계 경찰이 지난달 25일 코소보주 크루사 마을에서 학살한 알바니아계 남자 주민 약 1백명의 끔찍한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독점방영했다.

이 비디오테이프는 BBC가 알바니아계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밀라임 벨라니차로부터 입수한 것으로 수많은 시신이 피로 뒤범벅된 길거리와 건물 사이 등에 나뒹굴고 있는 처참한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필름에 담긴 장면이 너무나 처참해 사실보도를 철칙으로 하는 BBC도 일부를 삭제한 뒤 방영해야했다.

벨라니차는 이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세르비아 경찰이 25일 마을을 포위하자 대부분은 도망쳤으나 미처 도망가지 못한 약 1백명이 붙잡혀 모두 살해됐다”고 전했다. 그는 “경찰은 주민을 한명씩 차례로 처형했다”며 “대부분은 뒷머리에 총알 한발씩을 맞고 숨졌으며 일부는 도망치다가 총에 맞아 숨졌다”고 말했다.

벨라니차는 세르비아 경찰의 만행이 끝날 때까지 숨어서 지켜본 뒤 현장을 떠났다. 1주일간 근처 마을에서 숨어 지내던 그는 1일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학살현장을 다시 찾았다. ‘목숨을 걸고’ 만행현장을 카메라에 담기로 결심한 것.

벨라니차는 “나의 아들과 손자, 또 그 다음 세대가 세르비아인들이 알바니아계 주민들에 대해 저지른 만행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숨진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찍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가슴 조이며 촬영을 마친 그는 곧 알바니아로 탈출해 알바니아 주재 BBC기자에게 비디오테이프와 함께 자신이 알고 있는 희생자 26명의 명단을 제공했다. 이들은 대부분의 농부이며 코소보해방군(KLA)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벨라니차는 주장했다.

한편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4일 크루사에서 알바니아계 주민이 유고측에 의해 집단학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유고측은 코소보해방군(KLA)을 지지한데 대한 보복으로 마을 주민들을 한 곳에 모은 뒤 젊은이들을 골라내 총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김태윤기자·런던AFP연합〉

terre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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