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발칸전쟁의 경과를 살펴보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대통령이 치밀한 계산에 따라 휴전을 선언했을 것이라는 판단이 나온다. 유고는 NATO의 공습이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 대대적인 코소보 난민 추방에 나서 10여일 만에 알바니아계 주민 40여만명을 몰아냈다. 또 눈엣가시 같던 코소보해방군(KLA)도 무력화시켰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고가 이미 많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NATO의 공습을 중지 또는 완화시키기 위해 휴전카드를 들고 나왔다고 보고 있다.
6개국 접촉그룹 회의와 러시아가 제의한 선진 8개국(G8) 회의를 앞두고 휴전을 선언했다는 점도 외교적 공세의 냄새가 난다.
이는 공습에 불만을 품고 있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남부 국가들을 부추겨 NATO의 결집력을 약화시키고 유고를 두둔하는 러시아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로셰비치는 휴전제안도 교묘하게 만들어 내놨다. 코소보주의 자치를 허용하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 국제구호기구와 협의해 알바니아 난민을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서방이 요구하는 핵심사항인 코소보내 평화유지군 주둔은 빠졌다.
반면 밀로셰비치가 더이상 버티기가 어려워 휴전을 선언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NATO가 최근 정유공장과 다리 등 사회간접시설을 공습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대량파괴로 전략을 바꿀 조짐을 보이자 괴멸적 피해를 막기 위해 화해의 제스처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NATO는 최근 발칸반도의 날씨가 좋아지자 공격의 강도를 바짝 높였다. 또 미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가 전폭기들을 싣고 아드리아해로 접근하고 있어 현재의 대결상황이 그대로 지속되면 유고의 피해가 극심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NATO가 전투를 위한 지상군 파병은 부인하고 있으나 미국은 아파치 헬기와 지원병력을 알바니아에 배치, 금방이라도 지상전에 돌입할 태세를 갖춰 유고가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이같은 배경에 따라 NATO의 지상군 파병으로 사태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밀로셰비치가 휴전카드를 꺼냈다고 보고 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