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미사가 끝난 뒤 한 남자가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에게 유고 공습을 하루빨리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편지를 낭독하자 수백명의 세르비아인들이 열띤 박수를 보냈다. 전전(戰前)유고슬라비아의 왕위계승자 알렉산더 카라조르제비치 황태자였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공습이 무고한 유고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악몽으로 만들고 결과적으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대통령의 권력을 강화시켜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쟁으로 유고국민이 받은 충격과 상처를 치유하려면 한 세대가 지나야 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카라조르제비치는 1941년 나치의 위협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유고슬라비아의 마지막 황제 피터 2세의 장남으로 런던에서 출생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공산주의 정권의 등장으로, 공산정권이 무너진 후에는 유고연방의 분열과 독재자 밀로셰비치의 집권으로 왕위계승자이면서도 한번도 조국땅을 밟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밀로셰비치가 권좌에 있는 한 조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12일 프랑스 르 피가로지와의 회견에서 모든 당파와 인종을 초월할 수 있는 왕정이 유고에 인권과 진정한 민주주의를 복원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지금의 비극을 멈추기 위해서는 NATO와 밀로셰비치 양측이 휴전에 합의,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