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산들과 흐드러지게 핀 형형색색의 꽃, 고층빌딩 속에서도 한옥이 남아 있는 신구(新舊)의 조화, ‘교통지옥’,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현재의 서울은 77년 1월 내가 첫 발을 디뎠을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케 한다. 22년 전 강남은 한적한 시골이었다. 또 당시엔 야간통행금지가 있었고 거의 모든 차가 검은색이었다. 자가용도 드물었다. 서울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이었다.
29세의 젊은이였던 나는 한국산업은행의 요청으로 새한종금의 설립 타당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내한했었다. 영국의 동료들이 “한국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나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직접 와서 봐라”고 말했을 정도다.
나는 이제 롤스로이스 유로터널 등 한국내 영국기업의 경영을 맡고 있으면서 영국에 진출하려는 한국기업의 자문에도 응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서울에 살면서 6차례 집을 옮겼다. 한국인들이 보여준 인간적 호의(好意)에 지금도 감사한다. 이것이 아마 내가 한국에서 22년간 살아온 바탕이 된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에 특수한 재벌과 기업들의 높은 부채비율, 기업과 관료사회의 관계 등에 대해 알게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의 원동력은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한국을 미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97년말 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의 충격은 전쟁의 충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영국도 한때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금융위기에서 탈출한 적이 있다. 당시 대처총리의 강력한 지도력과 영국민의 의지가 합쳐져 영국은 국가경쟁력을 회복했다.
나는 지금 한국에서 변화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가치체계는 과감히 폐기되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조만간 지금의 고난을 딛고 새로운 발전을 이룰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한국에 머물면서 이 현장을 직접 목격할 것이다. 그때 그 성공의 희열을 나의 한국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앨런 플럼
△46년 영국 출생 △68년 셰필드대 졸업 △77∼82년 새한종금 금융담당 △90∼93년 주한 영국상공회의소(BCCK) 회장 △92년 이후 롤스로이스 인터내셔널 한국지사장(한국의 상용기 및 군용기에 롤스로이스의 항공엔진을 판매) 영국 무역산업부 자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