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학자『NYT 60년대까지 反유태주의 경향』

  • 입력 1999년 4월 15일 19시 52분


《미국언론은 유태인이 장악하고 있다고들 말한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도 유태인들이 창립해 오늘까지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유태인들이 엄청난 이득을 얻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많다.그러나 주간지 뉴요커는 19일자 최신호에서 이런 추론을 뒤집었다. 7년간 뉴욕타임스 1백3년의 역사를 연구해온 수전 티프트와 앨럭스 존스는 뉴요커 기고문을 통해 뉴욕타임스가 20세기중반까지 미국 내에 팽배하던 반(反)유태주의를 의식해 반유태주의의 경계선까지 넘나들었다고 폭로했다. 다음은 기고문 요지.》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건너온 유태인 후손 아돌프 오크스는 유태인 부인 이피제니아 와이스 가문의 도움을 얻어 1896년 파산상태이던 뉴욕타임스를 인수했다. 유태인들은 오크스를 도왔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반유태주의를 겪은 오크스는 되도록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 숨었다.

1914년 조지아주에서 유태인 사업가 레오 프랭크가 공장의 13세 소녀를 강간한 뒤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오크스는 프랭크가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됐다고 보고 뉴욕타임스를 통해 구명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반유태주의의 군중은 프랭크를 감옥에서 끌어내 직접 교수형에 처했다. 뉴욕타임스에는 유태인신문이라고 욕하는 항의편지가 쇄도했다. 그후 오크스는 유태인문제를 병적으로 기피했다.

오크스한테서 신문을 이어받은 사위 아서 헤이스 설즈버거 역시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호텔 예약이 취소되는 수모를 당하면서 반유태주의에 가담했다. 뉴욕타임스는 유태인 고용을 제한하는 취업광고가 불법이라는 검찰의 경고를 받을 때까지 그런 광고를 실었다. 44년 7월2일자 신문에서는 헝가리 유태인 40만명 처형소식이 12면으로 밀렸다.

유태인으로는 처음으로 63년에 존 오크스가 논설실장, 69년에 A M 로젠설이 편집국장이 됨으로써 유태인 차별이 막을 내렸다. 63년 회사를 인수받아 92년까지 발행인을 지낸 아서 펀치 설즈버거는 편집과 소유를 분리하고 편집에 간여하지 않는 전통을 확립해 유태인 편향이라는 오해로부터 신문을 구했다. 그리고 세계정상의 신문으로 발전시켰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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