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공습 25일득실]수천명 사상…「죽음의 神」설쳐

  • 입력 1999년 4월 18일 19시 52분


발칸전쟁 25일간의 득실은 무엇인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6억달러 이상의 전비(戰費)를 썼다. 유고는 군시설과 공장 공항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이 거의 파괴돼 복구에 몇 년이 걸릴 지 모르는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유고 군인과 민간인 1천여명이 죽고 3천여명이 다쳤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득실을 따지기는 어렵다. NATO는 코소보주 알바니아계 주민에 대한 유고의 ‘인종청소’를 종식시키고 난민 발생을 줄이려고 공습을 결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알바니아계 3천2백여명이 죽고 1백만명의 난민이 생겼다. 공습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NATO군의 민간인 오폭도 공습의 정당성에 상처를 입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ATO군의 공습 명분은 아직 살아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대통령이 인종청소라는 추악한 범죄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로셰비치대통령의 운명은 이 전쟁에 걸려 있다.

지금까지 밀로셰비치는 얻은 것도 있다. NATO군의 공습 앞에서 그의 통치기반은 강화됐고 세르비아계 국민은 결속하고 있다. 미국주도의 공습에 반발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지지도 얻고 있다.

각국의 득실은 공습이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분쟁이 길어질수록 NATO의 선택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심은 높아질 것이다. 클린턴대통령과 미국은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놓일 것이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발칸분쟁의 역사★

▽1389년〓코소보 전쟁. 오스만투르크, 세르비아 누르고 발칸반도 장악

▽1878년〓세르비아, 터키로부터 독립

▽1918년〓제1차 세계대전 종결. 코소보, 세르비아에 편입

▽1929년〓세르비아 절대왕정 성립. 유고슬라비아로 국명변경

▽1941년〓독일군 유고 침입

▽1945년〓제2차 세계대전 종료. 티토 주도로 공산유고연방 성립

▽1974년〓유고, 코소보 자치허용

▽1987년〓밀로셰비치, 정권장악 후 알바니아계 탄압

▽1989년〓유고, 코소보 자치권 박탈

▽1991년〓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유고연방 탈퇴

▽1992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유고연방 탈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유고연방 결성

▽1993년〓알바니아계, 코소보해방군(KLA) 결성

▽1998년〓유고, 알바니아계 ‘인종청소’ 재개

▽1999년2월〓프랑스 랑부예 평화협상

▽1999년3월24일〓NATO 공습개시

★발칸사태 키워드★

[유고연방]

정식 명칭은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뿌리는 요시프 티토 시대에 6개국으로 구성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가 91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92년 연방에서 탈퇴하고 남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92년 4월에 구성. 인구 1천65만명 중 세르비아계가 약 65%. 알바니아계는 약 15%로 주로 코소보주에 거주한다.

[코소보주]

유고연방 세르비아공화국의 한 주(州). 중세 이후 세르비아왕국의 영토였으나 1389년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에서 세르비아가 패배하면서 정교(正敎)를 믿는 세르비아인 대신 이슬람교로 개종한 알바니아인들이 정착했다. 유고의 ‘인종청소’ 이전까지는 인구 2백만명 중 90%가 알바니아계였다.

[코소보해방군(KLA)]

93년 결성된 코소보주 알바니아계 무장독립운동단체. 97년부터 세르비아 경찰과 세르비아 협력세력에 대한 테러를 본격화했다. 약 1만명으로 추정되며 대부분이 20,30대. 최고 기구인 12인 정치지도위원회를 하심타치(29)가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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