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여왕 방한]흥겹고 풍성한 여왕의『해피 버스데이』

  • 입력 1999년 4월 21일 20시 29분


21일 전통의 고장인 안동 하회마을에서 맞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73회 생일 잔치는 흥겹고 풍성했다. ‘세기의 귀빈’을 접대하는 주민들의 마음은 더욱 넉넉해 보였다.

이날 오전 11시35분경 유종하(柳宗夏)전 외무부장관의 안내를 받아 여왕이 전통한옥인 담연재(澹然齋)에 들어서자 안동하회별신굿 탈놀이보존회원 23명이 흥겨운 풍물패의 가락에 맞춰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을 시작했다.

여왕은 10분 가량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한번도 눈을 떼지 않았고 공연자들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에 이따금 웃음을 터뜨리면서 박수를 보냈다. 양반과 선비가 여주인공인 ‘부네’를 서로 차지하려다 망신을 당한다는 줄거리와 시대적 의미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공연 후 여왕은 회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 뒤 “아주 감명 깊게 봤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왕은 풍물패의 상쇠역을 맡은 임형규(林衡奎·46)씨가“오늘 공연한 탈놀이는 8백년 간이나 원형을 유지한 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하자 “정말이냐”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 담연재 마당 한가운데에 차려진 ‘생일상’으로 자리를 옮긴 여왕은 자신과 생일이 같아 초대된 하회마을 주민 5명으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자 즉석에서 ‘해피 버스데이 투 유’라고 화답했다.

여왕은 탈놀이 공연자 김종흥(金鍾興·46)씨로부터 축하술잔을 받은 뒤 참석자들과 함께 청주로 축배를 들었다. 여왕은 생일상에 차려진 음식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맛을 보거나 손을 대지는 않았다.

생일상에는 국수 편육 찜 탕 등 한국의 전통음식 48가지가 올랐다. 특히 인간문화재 조옥화(趙玉花·76·안동우리음식연구회장)씨가 만든 60㎝ 높이의 ‘떡꽃화분’이 눈길을 끌었다.

매화나무 가지에 각종 동물과 과일 모양의 떡을 매단 ‘떡꽃화분’은 조선시대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혼례식 수연 등을 기리기 위해 내놓는 귀한 음식. 여왕 수행원들과 외신기자들도 “생일상에 차려진 음식의 색깔과 모양이 매우 특이하다”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담연재에서는 집주인 류선우(柳善祐·63)씨 부부와 류씨의 장남 류시관(柳時觀·30), 차남 류시원(柳時元·28·탤런트)씨가 여왕 일행을 영접했다. 담연재 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여왕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대거 몰리면서 여왕이 도착할 때는 3천여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안동〓정용균기자〉jyk061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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