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난민수용소 그림展]전쟁은 童心도 앗아갔다

  • 입력 1999년 4월 26일 19시 54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아빠, 불타는 학교와 집, 탱크가 진을 치고 있는 마을을 황급히 떠나는 가족….

마케도니아의 브라즈다 난민수용소에는 요즘 때아닌 그림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난민촌 입구에 전시돼 있는 60점의 그림은 모두 이곳에 수용돼 있는 코소보 난민 어린이들이 그린 것.

전쟁을 목격한 아이들의 충격과 황폐해진 심리상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그림들은 암울한 회색이나 검은색, 붉은 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전시회를 기획한 전직 미술교사 사베딘 에테미는 “아이들을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고 취지를 밝혔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아이들의 충격은 상상외로 크다. 유엔아동기금(UNICEF)도 최근 코소보 난민 어린이들의 정신치료를 위해 알바니아의 난민촌에서 ‘그림을 통한 치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극도의 흥분상태에 있는 아이는 말보다 그림으로 감정을 쉽게 표현하기 때문. 일단 그림으로 표현하면 충격에서 벗어나기가 쉽다.

충격적인 경험에 대해 입을 열지 않던 코소보 소년 발론 블라차(11)는 그림을 통해 아픈 과거를 증언했다. 그의 그림에는 가족을 집밖으로 쫓아내려는 세르비아 경찰에 반항하던 아빠가 얻어 맞은 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습이 담겨 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에게 증오심을 심어주지 않으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그러나 전쟁의 잔임함은 이미 아이들의 동심을 앗아간 지 오래다. 블라차가 상상하는 자신의 모습은 난민이 아니다. 블라차는 어른이 된 자신을 총을 든 게릴라의 모습으로 그렸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