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요트를 타지 않던 젊은 시절 취미 사진에 푹 빠져 있었다. 60년경부터 여러 차례 촬영 여행차 한국을 방문해와 한국인 친구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당시에는 마음 한구석에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서울에서 카메라를 갖고 다니다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 전에는 공해상에 한국의 주권을 설정한 ‘이승만 라인’에 따라 외국어선의 조업이 금지된 후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된 65년까지 그의 고향 후쿠오카의 어선이 체포되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그는 73년 우연히 부산에 들렀다가 후쿠오카에서 온 제1회 한일친선레이스 참가 요트를 봤다. 당시 그는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비행기로 오면 금방인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년 후 요트를 타기 시작하면서 81년 제5회 레이스에 처음 참가했다. “바다를 건너 한국에 가면 또 다른 느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그는 “요즘은 비자가 없어도 레저 보트로 한국에 갈 수 있게 됐다. 레이스에 처음 나섰을 때는 군함이 서치라이트를 비추는 묘한 분위기에서 부산항에 들어갔다”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85년 제7회 레이스부터 한국요트가 출장하면서 그는 현해탄을 건널 때마다 한국이 더욱 가까운 나라가 됐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한일 요트레이스에 계속 참가하면서 이제 기탄없이 말할 수 있는 한국 요트맨 친구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이 대회에서 2회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 그는 “이제 우승을 못해도 괜찮다는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출발하면 반드시 이기고 싶어진다”며 “그러나 승패보다 더 소중한 그 무엇이 이 레이스에 깃들여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마쓰모토 유키히로 아사히신문 운동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