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EEZ내 조업현장]『앞에 고기떼 두고…』눈물로 귀항

  • 입력 1999년 5월 8일 20시 14분


7일 낮 12시 20분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EEZ)인 북위 33도 6분 동경 1백27도 57분.

제주 성산포에서 동남쪽으로 56마일 떨어진 1백13해구.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서 제주선적 연승어선 기성호(29t)만이 외로이 연승줄을 걷어올리고 있었다.

이 낚시줄에는 따가운 햇살을 받아 유난히 반짝거리는 은빛 갈치가 띄엄띄엄 올라왔다.

취재진을 태운 제주도 어업지도선인 삼다호(2백50t)와 조우하기직전 이 어선 선장 조기성(趙基成·42·제주 남제주군 성산읍 오조리)씨는 일본 EEZ구역내 출어규정에 따라 조업위치와 어획량을 목포무선국으로 타전했다.

이 어선이 잡은 이날 어획량은 1백10㎏.앞으로 일본 EEZ에서 잡을 수 있는 갈치는 1천5백㎏밖에 남지않았다.

기성호에 할당된 연간 어획량 9천4백㎏가운데 7천9백㎏을 이미 잡아버렸기 때문이다.

“다음에 한두번 출어하면 할당량을 모두 채우게 돼 연말까지 놀 수 밖에 없어요.”

피부가 검게 그을린 선장 조씨는 갈치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조업을 포기해야하는 억울한 심정을 전했다.

선원 김우일(38)씨는 “한일 어업협상이전에는 한달 1백50만원을 받았으나 지금은 한달 월급이 70,80만에 불과해 자식들 키우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일본 EEZ에서 조업중인 국내 어선들의 불만은 이에 그치지않았다.

국내 어선들은 2,3일에 한번꼴로 나타나 어창을 뒤지고 조업일지 등을 일일이 점검하는 일본 순시선의 단속을 견뎌야한다.

조씨는 “일본 순시선에서 5,6명이 한꺼번에 올라와 1시간가량 이잡듯이 뒤지는 광경을 보면서 속이 상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며“단속시간도 오래 걸려 조업에 지장을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일본 어선의 횡포도 심각한 상태.일본 저인망어선들이 연승줄을 끊고 달아나는 몽니를 부려도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다.

일본 EEZ에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24시간이전 무선국을 통해 일본에 입출역을 통보하는 것도 골칫거리중의 하나.

고기를 따라 다니다보면 수시로 EEZ를 들락날락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도 입출역절차를 따르다보면 고기떼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삼다호가 EEZ현장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무선을 통해 인근에서 조업중인 어선들로부터 불만이 쏟아졌다.

“할당량이 너무 적다” “일본 헬기가 공중을 선회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일본 어선이 어구를 망쳐놓고 도망쳤다” 등 평소의 고충을 토로했으며 한 어선의 선장은 “수산관련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와 실태를 경험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자망 저인망 연승 채낚기 등 어업별로 조업금지지역과 가능지역을 표시한 해도(海圖)마저 해양수산부에서 만들지 않았다”는 한 선장의 말에서 부실한 해양정책의 현주소를 알 수 있었다.

〈제주=임재영기자〉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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