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81세議員의 준법정신]사소한 추돌사고 법정 출두

  • 입력 1999년 5월 13일 20시 03분


미국에서 로버트 버드 상원의원(81·민주·웨스트 버지니아)은 ‘살아있는 헌법’으로 불린다. 58년 이후 무려 41년 동안 상원의원으로 일하면서 국가적 대사가 있을 때마다 헌법에 입각한 원칙을 제시해왔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에서 하원이 추악한 당파싸움을 벌인 것과 달리 상원이 의원들의 양심에 따른 탄핵표결로 의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은 데도 그의 영향이 컸다. 그는 고아였다. 대학에 다닐 수도 없었다. 그래서 조선소 용접공으로 일하다 주(州)의회의원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의원이 된 뒤에야 야간대학에서 10년 동안 공부한 끝에 변호사자격을 땄다.

그런 그가 7일 교통사고를 냈다. 금요일 의회를 마치고 지역구로 손수 차를 몰고 가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추돌사고를 냈다. 옆 차선을 달리던 차가 갑자기 차선을 바꿔 그의 자동차 앞에서 급정거하는 바람에 피할 사이도 없이 들이받고 말았다. 그는 앞 차 운전자에게 “왜 갑자기 멈춰섰느냐”고만 묻고는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그대로 기다렸다.

경찰은 그를 인근 경찰서까지 연행한 뒤 교통법규위반 법정에 출두하라는 요구서를 발부했다. 그의 차도 견인됐다.미국에서도 의회 회기 중에 의원들은 체포되지 않을 특권(불체포 특권)을 갖는다. 교통법규를 위반해도 법정 출두요구를 받지 않는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군말없이 경찰의 법집행을 받아들였다.

출두요구서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가 보좌관이 몰고온 차로 경찰서를 떠날 무렵에 카운티소속 검사의 유권해석이 도착했다. 경찰의 출두요구서는 잘못됐다는 유권해석이었다. 경찰서장은 그에게서 출두요구서를 돌려받아 찢어버렸다. 그의 대변인은 “그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권위를 존중하려 했다”고 말했다.

검찰의 출두요구도 거부하고 억지로 ‘방탄국회’까지 여는 한국의 정치인들과는 너무 다르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