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바라크시대]바라크, 그는 누구?

  • 입력 1999년 5월 18일 20시 00분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 당선자(57)는 중동평화협상에 대해 온건론을 견지하고 있지만 과거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일 만큼 화려한 군경력을 자랑하는 전쟁영웅이다. 최고훈장인 무공훈장을 포함해 많은 훈장을 받아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군인’으로 불린다.

오랜 군생활에도 불구하고 동안(童顔)인데다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등 군인이되 온건주의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지녔다.

17세에 입대해 서른도 되기 전에 특수부대 사령관에 오를 정도로 승승장구한 그는 95년 1월 군참모총장을 끝으로 36년간의 군생활을 마쳤다. 그해 7월 이츠하크 라빈 전총리에 의해 내무장관에 기용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평화주의자 라빈의 후예로 알려져 있으며 대체로 라빈의 평화노선을 추종해 왔다. 시몬 페레스 총리 정부에서 외무장관을 지냈으며 97년 6월 노동당 당수가 됐다.

이스라엘 정계의 한 축을 맡게 된 바라크는 줄곧 “중동평화를 위해서는 이스라엘 영토의 일부를 양보할 수도 있다”는 온건론을 폈다.

그는 67년 ‘6일 전쟁’에서 82년 레바논 전쟁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치른 유명한 전쟁에 빠짐없이 참전했다. 73년에는 여장(女裝)을 한 채 특공대를 이끌고 레바논 베이루트에 침투해 72년 뮌헨올림픽 때 이스라엘선수를 학살한 팔레스타인 게릴라 ‘검은 9월단’의 간부 3명을 살해했다. 72년 벨기에 사베나 여객기 납치사건 때는 정비공으로 가장해 기내에 침투, 수백명의 승객을 구했다.

한편으로는 94년 팔레스타인과 벌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대한 협상, 95년 시리아와의 평화협상에 군인 신분으로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이력을 근거로 바락을 ‘극과 극’의 조화를 추구하는 인물로 보고 있다.

바라크의 부모는 30년대 초반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에서 각각 이스라엘로 이주한 열성 시오니스트. 4형제 중 장남인 바라크는 키부츠 농장에서 성장했다. 68년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 수학과 물리학 학사, 87년 미 스탠퍼드대에서 체계분석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