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페리 조정관의 북한체류 기간이 당초 예상보다 긴 4일이나 된다는 것은 그가 여러 사람을 만날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페리 조정관은 우선 북한의 국가수반인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을 만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페리 조정관이 미국을 대표한 공식특사인데다 지미 카터 전대통령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북한을 방문한 미 행정부 인사 중 가장 고위급이라는 점 때문에 북한의 대외업무를 맡고 있는 김영남위원장이 페리 조정관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의 백남순(白南淳)외무상과 김계관(金桂寬)외무부상 등도 페리 조정관과 대화가 가능한 인사들로 꼽는다.
하지만 한미일 3국이 심혈을 기울여 면담을 추진하고 있는 인물은 북한의 최고실권자인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김정일위원장을 만나야만 3국이 제안한 대북권고안에 대한 북한측의 반응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고 협상도 본궤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94년 카터 전대통령이 북한에서 김일성(金日成)주석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것도 최고통치권자와의 ‘직거래’가 대북포괄협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케 한 사례다.
하지만 북한은 페리 조정관의 김정일위원장 면담여부를 아직까지 확인해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측이 그동안 방북인사들에게 단 한번도 사전에 김정일위원장과의 면담성사 여부를 확인해준 적이 없다는 점을 들며 기대를 거는 것 같다.
그러나 김정일위원장이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명예회장을 전격적으로 면담했던 방식대로 페리 조정관을 만날 것인지는 미지수다. 만일 김정일위원장이 페리 조정관을 만난다면 그 시기는 27일이나 28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영남위원장 등 북측 고위인사들이 페리 조정관으로부터 대북권고안의 윤곽을 먼저 듣고 김정일위원장에게 면담성사 여부를 건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일위원장이 페리 조정관을 만난다면 그 자체가 대북권고안에 대한 긍정적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고 나아가 향후 진행될 포괄협상의 청신호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