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은 코소보에 남겨둔 아내와 두 딸을 미국으로 이주시키려다 숨진 바즈라타르(52)의 사연을 23일 소개했다.
돈을 벌려고 가족과 떨어져 수년 간 미국 시카고에서 일하던 무하메트가 고향 코소보를 다시 찾은 것은 지난해 초.
“돈을 벌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이를 악물고 일하고 있었지만 유고 연방 세르비아계에 의한 인종청소 성폭행 등 흉흉한 소식을 듣고 미국에 홀로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주할 방법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느라 금세 해가 바뀌었다. 세르비아군의 코소보 탄압은 하루가 다르게 거세졌고 마침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공습도 시작됐다.
3월 28일 저녁, 그는 들뜬 표정으로 집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어렵사리 구한 미국행 서류와 비자가 든 봉투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집이 있는 코소보 글로고비체 마을을 불과 1.8㎞ 남기고 세르비아군인의 제지를 받았다. 군인은 통행금지라며 되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실랑이를 하던 그는 품 속의 서류를 한시바삐 가족에 건네야 한다는 생각에 설마 하며 집쪽으로 발길을 뗐다. 그 순간 무자비한 총탄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총성을 듣고 달려온 주민들이 그를 집으로 데려갔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생명의 불길은 가물거리고 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품 속에서 봉투를 꺼내 아내에게 건네준 그는 이내 숨을 거뒀다.
5월 14일, 아내와 두 딸은 무사히 미국에 도착했다. 가장의 목숨과 바꾼 이민서류와 함께. 가장이 일했던 직장을 둘러본 유족은 다시 한번 통곡해야했다. “잘 살고 있으니 내 걱정은 말라”며 수시로 돈을 보내주던 가장이 실은 주당 1백50달러(약 18만원)를 받는 작은 식당의 종업원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던 것이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