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카르타는 축제 분위기다. 시내 중심부 8개 간선도로에는 각 정당의 지지자 수십만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정당의 행렬이 바뀔 때마다 서로 다른 원색의 물결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최대 야당 민주투쟁당의 빨강, 다른 야당 국민수권당의 파랑, 인도네시아 공화당의 오렌지색, 그리고 한 이슬람 정당의 하얀 파도…. 초여름의 자카르타는 거대한 카드섹션을 벌이고 있다.
버스 지붕과 오토바이 위에 올라선 지지자들 , 배와 등과 이마에 정당 심벌을 페인트로 그린 젊은이들, 쩌렁쩌렁한 연호와 메가폰을 통해 나오는 노래소리가 ‘민주의 향연’을 펼친다. 자카르타의 한 호텔은 스펙터클한 선거운동을 보자는 패키지 관광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선거는 위험스러웠다. 97년에는 3백20여명이 숨졌다. 2억이 넘는 인구가 섞여 살면서 종족과 종교를 둘러싼 갈등을 빚고 반정부세력도 출몰한다. 선거철 범죄도 많다.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도 일본인 한 사람이 무장강도들에게 피해를 보았다. 97년 총선에서 많은 사상자가 난 것도 선거운동 마지막날 흥분한 군중이 백화점을 약탈 방화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선거운동은 4일로 끝난다. 5,6일은 진정 기간이다. 수하르토 하야까지 이뤄낸 인도네시아 국민은 정치적으로 성숙해 민주역량을 꽤 갖춘 듯하다. 예전같은 폭력사태는 크게 줄었다.
선거운동이 순조로운 것은 ‘트리오’라 불리는 민주투쟁당 국민수권당 민족각성당 등 3개 야당의 공조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유세과정에서 가장 돋보인 정당은 역시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가 이끄는 민주투쟁당이다. 젊은이들 중심의 지지자, 그들의 질서정연함, 통일된 유니폼과 인상적인 캐치프레이즈 등이 강력한 조직력과 풍부한 자금력을 엿보게 한다.
선거후 개표가 투명하지 않으면 소요가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인도네시아 시민단체들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자유공정선거를 위한 아시아 민간단체연합(ANFREL)’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투표율도 중요한 관심사다. 정부는 유권자 등록률이 88.9%(총유권자 약 1억4천1백만명)라고 발표했지만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지역별로 투표율 편차가 심하면 새 정부의 정통성이 낮아지고 외곽 섬 주민들의 소외감도 심해질 것이다.
이번 선거로 정통성 있는 정권이 출범해 인도네시아 경제위기를 헤쳐나가기를 바란다. 7일 총선의 공정성 여부는 인도네시아의 향후 운명과도 연결돼 있다. 지금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