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 사건이 과연 대화를 통해 원만히 수습될 수 있을 지 여부에 대해선 정부와 북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낙관론과 신중론이 엇갈린다.
임동원(林東源)통일부장관은 13일 “북한이 11일 판문점 대표부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 자체가 대화를 통한 해결 의사를 표명한 것”이라며 “이번 일로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대체로 이같은 전망에 입각해 이산가족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1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남북 차관급 회담과 대북 비료지원이 별 차질없이 진행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북한이 비료지원의 반대급부로 이산가족문제를 논의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번 일을 일으켰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게 대두된다.
한 북한전문가는 “북한이 대외용인 평양방송뿐만 아니라 대내용인 중앙방송을 통해서도 판문점 대표부 성명을 보도한 것은 차관급 회담에서 긴급의제로 ‘서해 사건’을 제기하기 위해 내부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90년9월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때도 남북이 합의한 당초 의제를 무시하고 △문익환(文益煥)목사 등 구속된 방북자 석방 △유엔가입 △팀스피리트 중단 문제 등을 긴급의제로 들고 나왔었다.
또 장성급 회담이 열린다 해도 정부는 북방한계선 문제는 의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주장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커 회담이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은 우리측 군함이 오히려 북한 영해를 먼저 침범했다고 주장하며 철수와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발단과 책임소재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차를 좁히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게다가 정전협정에 해상에서의 군사분계선에 관한 조항이 명확히 정리돼 있지 않아 우리측이 설정한 북방한계선을 북한이 앞으로도 계속 침범할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남게 된다.
문제는 우리측이 북한측에 남북간에 새로운 해상 군사분계선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북방한계선 침범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는 것 이상의 근원적인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12일 해군 군함이 북한 경비선의 선미를 들이받아 북방한계선 바깥 쪽 북한 영해로 밀어낸 것 정도가 현실적으로 남북관계의 악화를 감수하지 않는 선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앞으로 차관급 회담을 장관급이나 총리급 회담으로 격상시킬 예정”이라고 밝히는 등 그동안 정부가 국민에게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갖게 한 것도 정부의 선택을 어렵게 하는 요인.
정부가 북한에 강경 대응을 하다 남북관계가 교착, 악화되는 일이 발생할 경우 자칫 비료만 주고 이산가족교류문제를 포함한 남북관계는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아무튼 모처럼의 남북대화를 앞두고 발생한 이번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지는 장성급 회담을 통해 북한의 의도가 어느 정도 드러난 뒤에나 전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