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석학 카레르-당코스교수·김학준 본사고문 대담]

  • 입력 1999년 6월 17일 19시 43분


《프랑스 최고의 러시아문제 전문가 엘렌 카레르―당코스(70)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세종연구소 한국개발연구원 정신문화연구원 서울대 등에서 ‘한국과 러시아관계’를 주제로 강연하며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러시아문제 전문가인 김학준(金學俊) 본사 편집논설고문이 17일 주한프랑스대사관저에서 카레르―당코스를 만나 △한반도 정세 △러시아정국 전망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프랑스 정부 후원으로 14일 서울에 온 카레르―당코스는 19일까지 한국에 머문다.》

▽김학준〓구소련붕괴를 78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정확히 예측한 교수와 대담을 하게 돼 매우 기쁘다. 나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러시아 혁명사에 관한 책을 저술했다. 국제적인 러시아 전문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교수의 저서에서는 언제나 날카로운 예지를 느낄 수 있다. 구소련 붕괴를 예측한 통찰력으로 볼 때 북한의 장래를 어떻게 예상하는가.

▽카레르―당코스〓구소련 붕괴를 예측한 잣대를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다민족 국가인 소련과 달리 북한은 단일민족 국가다. 따라서 소련처럼 민족간 대립이 중요한 붕괴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북한의 정치 경제 체제가 붕괴되고 있다. 현재의 북한 사정을 감안할 때 북한 체제가 영구적으로 살아남으리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더구나 오랫동안 북한이 모방했던 중국마저 개혁개방으로 체제를 급속도로 바꾸고 있다. 북한은 더이상 벤치마킹할 국가가 없어진 셈이다.

최근 10여년간 동아시아는 급속도로 변했다. 89년 이전만 해도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을 놓고 경쟁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시아 전역에서 긴장이 완화되고 있다.

▽김〓발칸이 유럽에서 가장 위험하다면 한반도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최근 서해상에서 발생한 남북한 해군의 교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카레르―당코스〓마침 내가 서울에 체류하고 있을 때 이같은 사건이 터져 한반도가 발칸처럼 위험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비록 한국사정에 정통하지는 않지만 서해상 교전과 같은 사태가 전쟁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본다. 지금 한국은 전쟁을 수행할만한 능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전쟁을 방지할만한 억지력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국제사회가 북한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기는 힘들 것이다.

▽김〓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러시아의 개입없이는 발칸의 진정한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는데 한반도 문제도 러시아의 참여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가. 한국과 미국은 러시아를 배제한 4자회담을 추진, 현재 진행중이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 굉장히 분노했으며 러시아의 참여를 보장하는 6자회담을 줄곧 주장하고 있다.

▽카레르―당코스〓발칸에서 러시아의 존재가 필요했다고 해서 한반도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없다. 러시아가 6자회담을 주장하며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고 싶어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러시아는 개입할 능력이 없다. 러시아가 6자회담을 주장하는 것은 미국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한반도를 미국의 독무대로 만들지 않기 위해 6자회담을 주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자회담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한반도와 관련, 현재 더이상 잃을 것은 없는 반면 얻을 것은 많다. 그래서 러시아의 개입이 오히려 한반도 문제 해결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김〓이즈베스티야지 이타르타스통신 등 러시아 언론들은 이번 서해상 교전을 보도하면서 북한이 아닌 한국 국방부 대변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있다. 러시아언론들이한국측을 두둔하는 것처럼 보여 놀랍다.

▽카레르―당코스〓당연하다. 러시아는 더이상 북한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이 러시아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과 경제협력관계를 강화하길 바라고 있다. 과거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이 맞서있을 때 등거리 외교로 러시아를 이용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또 요즘들어 러시아를 거쳐 유럽에 북한산 마약이 유통되는 바람에 러시아가 북한을 더 미워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가 이 마약 유통망을 차단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나마 러시아가 북한과 이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 통일에 대비해서다. 러시아는 북한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김〓남북한이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또 가장 바람직한 통일방법에 대한 고견을 들려달라.

▽카레르―당코스〓단일민족인 한국이 계속 분단상태로 남아 있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통일이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독일은 통일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점진적인 통일이 남북한 양측에 이롭다.

▽김〓러시아군이 코소보주에 진주한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들었다. 코소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러시아의 개입이 불가피한 것인가.

▽카레르―당코스〓러시아군이 코소보에 진주한 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고 양측에 유익하다. 코소보 사태를 해결하는데 있어 러시아를 배제하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다.

▽김〓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이 전범으로 기소됐는데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카레르―당코스〓밀로셰비치가 전범으로 기소된 것은 심각한 사안이 아니다. 그는 전쟁전부터 유고에서도 인기가 없었다. 코소보사태 이전 세르비아를 방문했을 때 반(反) 밀로셰비치 시위를 목격했다. 전쟁이 터지면서 시위가 사라졌기 때문에 전쟁이 밀로셰비치를 구한 측면도 있다. 특히 세르비아정교회가 밀로셰비치의 사퇴를 주장한 것은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정리〓이희성기자〉leehs@donga.com

★카레르-당코스 교수 약력★

△29년 프랑스 파리 출생

△파리Ⅰ대학 문학 및 인문학 박사

△81∼85년 파리Ⅰ대 교수

△85년∼현재 파리정치대 교수

△90년∼현재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94∼99년 유럽의회 의원

▽저서〓러시아 이슬람권의 개혁과 혁명(66), 붕괴된 제국(78), 몰수된 권력(80), 평화도 전쟁도 아니다(86), 국가들의 영광(90), 소련과 러시아의 민족문제(95), 레닌(98)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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