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관광객 억류]남북관계 걸림돌…햇볕정책 큰고비

  • 입력 1999년 6월 22일 01시 39분


북한이 남한에 거주하는 북한귀순자에 대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씨(36·주부)를 억류조치함으로써 남북관계 진전에 또하나의 걸림돌이 추가됐다.

지금까지 북한이 몇몇 관광객들의 신원을 문제삼아 관광선에서의 하선을 거부한 적은 있지만 관광객의 ‘언행’을 문제삼아 억류조치하기는 이번이 처음. 이 때문에 이번 북한의 민씨 억류조치가 장기화할 경우 향후 금강산관광 뿐만 아니라 경제교류 및 대화, 식량 및 비료지원 등 다방면에 걸쳐 남북관계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정부가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측 인원에 대한 신변안전 문제가 생길 경우 금강산 사업을 중단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북측에 전달키로 함으로써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관계가 ‘햇볕정책’ 추진 이전 상황으로 냉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1일 긴급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상임위원회 회의는 2시간25분에 걸쳐 시종 긴장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참석자들은 모두 굳게 입을 다문 채 총총히 자리를 떴다. 우리 관광객의 신변문제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이날 회의결과는 한마디로 ‘금강산관광 전면 중단’이라는 배수의 진을 치면서 북한측의 억류조치 해제를 기다리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북한이 ‘민씨 억류’라는 초강수를 둔 배경도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 북측은 민씨가 “남한으로 넘어온 북측 귀순자들이 잘 살고 있다”며 사실상 ‘귀순 공작’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을 빌미로 북측은 민씨에게 100달러의 벌금을 물렸으며 한발 더 나가 민씨를 출입국 관리소로 연행, 억류하고 있다.

이는 ‘북측은 관광객 등이 북측의 관습을 따르지 않거나 사회적 도덕적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광객을 북한에 억류하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는 현대와 북한측이 지난해 맺은 금강산관광을 위한 부속합의서 10조2항을 명백히 위반한 것.

북한이 이처럼 우리 정부의 강한 반발을 예상하면서까지 민씨를 억류시키는 초강수를 둔 것은 서해교전사태 이후 고조된 ‘대남(對南) 감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해 교전에서의 패배에 대한 ‘보복적’ 분풀이 성격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튼 민씨 억류사건이 장기화할 경우 현 정부가 대북정책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고수해온 ‘햇볕정책’도 중대한 고비에 접어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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