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현재 20세기의 총결산 단계에 들어갔다. 제3의 개국을 추진중이다. 메이지(明治)유신을 통해 제1의 개국을, 맥아더원수에 의해 제2의 개국을 했다면 이제는 21세기를 앞두고 제3의 개국을 하려는 것이다.
20세기는 가장 빛나는 시기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비참한 시기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세계공황도 있었다. 한편 과학분야에서는 소립자론 등 경이적인 발전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핵과 DNA이다.
핵은 원자력으로 이용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원자폭탄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DNA 연구결과는 암을 예방하는데 쓰일 수 있지만 이에 따른 복제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밖의 핵’과 ‘안의 핵(DNA)’이 플러스 측면과 마이너스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21세기에는 환경 남북(南北) 인권 인구 식량 물자원 에너지문제 등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특히 환경문제는 남북문제와 관련이 있다. 개발도상국은 이산화탄소 배출제한 조치와 관련해 선진국을 향해 “너희들은 이미 다 해놓고서 왜 우리만 막느냐”고 항의한다.
산업화 민주화 민족주의 지역주의 글로벌리즘이 21세기의 흐름을 형성할 것이다. 글로벌리즘은 역사의 필연이다. 그러나 헤지펀드가 증명하고 있듯이 이 또한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동시에 나타난다.
나는 특히 교육문제를 관심있게 보고 있다. 전세계적인 문제이지만 일본에서도 청소년범죄 학급붕괴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교육붕괴’에 대해 모두가 함께 생각해보아야 한다.
민주주의가 평등과 개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맘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지나친 상대주의는 결국 허무주의를 낳는다. 부처님은 아침 햇볕을 보고 해탈을 얻었다고 한다. 원칙이 필요하다.
헌팅턴이 말했던 ‘문명의 충돌’은 없을 것으로 본다. 인류는 바보가 아니다. 인도의 카슈미르에서처럼 종교간 분쟁은 있을 수 있지만 십자군전쟁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고려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것을 계기로 한일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나는 총리가 된 뒤 한국을 맨처음 방문했는데 한국말을 미리 공부해 당시 만찬에서 인사말을 한국말로 했다.
지난번 아시아에 몰아닥친 금융위기를 보고 이 지역에서 금융협의회의 필요성을 느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도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본 정치인들이 무심코 ‘아시아 펀드’라고 말해 미국이 오해하고 반대했다.
이는 폐쇄적인 협의회가 아니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유럽연합(EU)까지도 포함하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협의회를 말한다. 여기에는 엔과 달러, 나아가 중국의 위안화도 들어갈 수 있다. 다만 미래에는 동아시아 경제권이라는 것도 시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옆에는 중국이라는 대국이 있는데 앞으로 어느 쪽을 지향할지 주목된다. 한국과 일본은 대승적인 자세를 가지고 아시아발전의 원동력이 돼야 한다.
★문답요지
―일본문화의 한국개방에 따른 일본국민의 반응과 양국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김대통령이 일본문화 개방과 관련해 담대한 조치를 취한 점에 감사드린다. 원래 일본문화는 한국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두 민족이 단결해 새로운 문화의 창조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귀중한 일이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독자적인 발전을 추구하면서 서로 자극과 영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금융협의회 제안은 혹시 엔블록 구축을 위한 것이 아닌지….
“97년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한국까지 북상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운명공동체 속에 있다는 점을 절감했다. 우리 시스템에 결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지역의 대통령과 총리 경제장관 등이 서로 모임을 가지고 이 문제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시아 전체가 힘을 합쳐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협의기구가 필요하다.”
〈정리〓공종식기자〉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