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 사무총장은 이날 영국 BBC방송과의 회견에서 “유엔무기사찰단원들이 이라크에서 미국을 위해 첩보활동을 했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정당성이 있다”며 “미국은 결코 이같은 주장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로 인해 이라크에서 무기사찰을 담당하고 있는 유엔특별위원회(UNSCOM)의 활동이 손상을 입었으며 나아가 다른 나라의 대량파괴무기 해체노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난 총장의 이같은 발언은 미국이 최근 유엔분담금을 축소한 데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미 상원은 22일 미국의 유엔 운영경비 분담률을 현재의 25%에서 20%로, 유엔 평화유지활동 분담률은 31%에서 25%로 낮췄다. 상원은 또 미국의 연체금이 16억달러라는 유엔의 주장과 달리 연체금은 10억달러라며 이를 3년동안 나눠 갚도록 했다.
아프리카 가나의 외교관 출신으로 97년 1월 유엔사무총장이 된 아난과 미국의 불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난 총장은 이라크가 무기사찰을 거부하던 지난해 2월과 11월초 바그다드를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를 통해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사찰 협조약속을 받아내 미국의 공습계획을 두차례나 무산시켰다. 아난 총장의 발언으로 6개월 이상 중단되고 있는 이라크에 대한 무기사찰이 당분간 재개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영국은 엄격한 조건을 걸어 이라크에 대한 사찰활동을 재개하자는 결의안을, 프랑스 러시아는 이라크가 사찰에 응할 경우 유엔의 제재를 해제하자는 결의안을 각각 유엔에 제출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