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프랑스]夏至 달구는 음악축제

  • 입력 1999년 6월 29일 19시 30분


일년 중 가장 해가 높고 낮시간이 긴 하지, 프랑스는 온통 축제의 열기로 달아오른다. 21일 오후 7시부터 오각형의 프랑스 땅 전역에서 음악의 날 행사가 펼쳐졌다.

밤 10시가 넘어서도 햇빛의 꼬리가 남아 있는 이날 전통적으로 가장 큰 무대가 펼쳐지는 레퓌블릭 광장과 바스티유 광장 등에는 인파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보오즈 광장에는 600명으로 구성된 어린이 합창단이 공연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유명 가수들은 병원과 감옥을 찾아 환자들과 수형자들을 위한 무대에서 위문공연을 펼쳤다. 카르티에 라탱의 대학가 식당과 술집에는 젊은이들이 넘쳐났다.

거리 곳곳에는 크고 작은 즉석 연주장이 개설되었고 바이올린이나 드럼, 색소폰을 든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작은 공연단을 조직해 진을 쳤다. 파리시내 20개 구청도 청사 앞마당에 마련한 여름축제에 주민들을 초대했다.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의 구청에서는 오페라를 공연하기도 했다. 이날 파리의 하늘은 밤이 늦도록 음악 소리와 젊음의 열기가 자욱했다.

파리시는 주요 지점마다 경찰을 배치해 불상사에 대비하고 행사가 있는 지역의 지하철 역사는 문을 걸어 북새통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했다. 미테랑정권 출범 다음 해인 82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8회째를 맞은 음악의 날 축제는 사회당정권 출범시부터 10년 동안 문화부장관을 역임했던 자크 랑의 작품이다. 자크 랑은 이 행사를 정치적 효과까지 고려하여 조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회당 집권 이전까지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던 드골리즘과 거세게 밀려드는 미국문화에 맞서는 새로운 문화의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새로이 들어선 정권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야당인 우파의 공세에 맞서는 정책을 구상했다.

특히 극우파가 득세하는 것은 좌파정권에 위협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시 정권의 중요한 과제였다. 자크 랑의 음악축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획됐다.

그는 록이나 힙합에서 재즈 컨트리음악 클래식 그리고 실험음악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이 제한없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도록 행사를 기획했다. 그래서 거리에 나온 젊은이들이 다양한 예술세계를 접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보편성을 몸에 익히도록 했다. 이같이 균형잡힌 보편주의 정신이 극우주의 풍조가 확산되는 것을 막게 해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교통이 마비될 것을 각오하면서 전국적으로 주요도시의 간선도로와 광장들을 공연장소로 내줌으로써 젊은이들에게 거리는 공권력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이런 조치는 또 젊은이들에게 주인의식과 참여정신 등 시민의식을 높여주는 효과를 얻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자크 랑의 의도는 색이 바랬으나 일상의 생활에 지친 시민들에게 활력을 주고 재충전의 기회를 주는 행사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프랑스의 음악축제가 성공을 거두자 이미 지구 북반구의 5대륙에서 85개 나라가 이 축제를 수입해 개최하고 있다. 베를린 바르셀로나 로마 프라하 등 뿐만 아니라 올해부터는 뉴욕에서도 이 행사를 시작했다.

연중 낮이 가장 길어 집에 있기가 갑갑한 날, 거리에 나온 시민들을 위한 음악축제가 이제는 점차 지구촌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김제완(파리교민신문 오니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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