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라종합연구소 세키 도시오(關志雄)주임연구원은 “아시아경제는 ‘엔화강세 때 호황, 엔화약세 때 불황’이라는 패턴을 15년간 반복해 왔다”며 “따라서 엔화와 아시아 통화의 연동은 상호이익이 되며 달러의존 위험이 노출된 지금이 엔화국제화의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은 외환준비보유액 대외순자산 정부개발원조(ODA)에서 세계 1위를 자랑한다. 그러나 엔화의 위상은 형편없다. 세계 무역결제에서는 5%, 외환준비액으로서는 4.9%에 불과하다. 일본조차 수출의 52.1%와 수입의 70.8%를 달러로 결제하며 엔화 결제는 35.8%와 18.9%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미국시장이 일본수출의 30%를 차지하는 등 무역구조적 요인도 있지만 일본의 책임도 크다. 독일기업이 이익극대화와 환리스크 탈피를 위해 마르크 결제를 늘린 반면 일본기업은 시장점유율 확보에 집착, 달러에 의존했다. 자본수출액중 60%가 미국 증권시장에 흘러갔고 ODA도 달러로 이뤄졌다.
올해초 유럽단일통화 유로의 출범은 일본을 더욱 자극했다. 일본은 이 기회를 놓치면 달러―유로―엔의 3극 통화체제로 옮겨가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판단하게 됐다.
이에 따라 일본은 ODA를 엔화 결제로 바꾸고 일본제품을 수출할 때도 엔화 결제를 대폭 늘리기로 했다. 해외투자가의 엔화표시 채권매입을 촉진해 도쿄금융시장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단기국채(TB)와 정부단기증권(FB)구입에 대한 원천징수제도를 폐지하고 자유입찰제도를 신설했다. 아시아 각국의 환율결정 때 달러 유로 엔을 함께 감안하는 ‘통화바스켓 제도’와 97년 미국의 반대로 일단 좌절된 아시아통화기금(AMF)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지난해 5월 일본정부에 엔화 국제화 추진을 공식요청하는 등 일부 주변국가도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는 역사적 피해에 따른 대일(對日) 경계심리가 남아 있다. 미국과 유럽이 달러와 유로의 비중축소를 방치할 것 같지도 않다. 엔화 국제화는 아직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