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만에 끝난 「이란의 봄」…개혁파 하타미 입지 약화

  • 입력 1999년 7월 16일 01시 24분


개혁을 요구하며 거세게 번지던 이란 대학생들의 시위가 6일만에 사실상 끝났다. 압돌바헤드 무사비―라리 이란 내무장관은 14일 학생시위가 진정돼 이란이 평온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대신 이란 주요 도시에서는 14, 15일 이틀동안 이슬람 혁명정신을 지지하는 관제시위대가 거리를 메웠다. 14일 테헤란에서는 10만명이 “혁명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치며 보수파의 승리를 확인했다. 반면 개혁의 상징인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목소리는 사그라들었다.

개혁성향 신문의 폐간에 대한 항의로 촉발된 이번 시위는 한때 79년 이슬람 혁명 당시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다. 사상자가 발생하자 하메네이도 강경진압에 나선 경찰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물러서는 듯했다. 군과 경찰 사법부 등 핵심권력을 모두 거머쥐고 있는 하메네이의 이같은 수세적 태도는 이례적인 것이어서 대학생 시위가 대대적 개혁의 물꼬를 트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20년간 이란을 다스려온 보수파는 노회했다. 미국정부가 학생들의 시위를 지지하자마자 시위를 미제(美帝)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몰아붙이며 상황을 역전시켰다. 보수파는 TV와 라디오 등 언론을 적극 활용했다. 시위 보도를 통제하는 대신 언론을 통해 관제데모 참여를 촉구했다. 심지어 시위대간의 통신을 막기 위해 휴대전화 통화까지 통제했다.

결국 역부족을 실감한 하타미도 학생들에게 시위를 계속하면 무력으로 진압하겠다는 경고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일부 외신은 이번 사태로 하타미 대통령이 개혁을 추구하다 물러난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보수파가 일단 승리했으나 개혁의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볼 수는 없다. 97년 대선과 올 3월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개혁파가 압승을 거둔 데서 알 수 있듯 ‘말없는 다수’는 여전히 개혁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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