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라국왕은 29일 암만의 왕궁을 몰래 빠져나와 자유무역도시인 자르카로 갔다. 수수한 전통 아랍 의상에 가짜 턱수염, 머리카락에 희끗희끗하게 분칠까지 한 국왕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AFP통신은 경호원도 없이 왕실 공보수석 한명만 ‘카메라맨’으로 대동한 압둘라국왕이 마이크를 들고 방송기자인 척하며 민심을 ‘취재’했다고 전했다. 국왕이 지나가던 상인과 투자자들을 붙잡고 경기동향과 애로사항 등을 묻자 이들은 거침없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관청에 가면 공무원이 40명이나 앉아 있는데 간단한 서류 하나 떼는 데도 나흘씩 걸립니다.” “세관공무원들의 고질적인 관료주의와 고압적인 자세는 여전합니다.”
5시간 동안 ‘발로 뛰며’ 국민의 목소리를 듣던 국왕을 시청공무원들이 막아서며 신분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압둘라국왕은 할 수 없이 수염을 떼고 “나는 왕이다”라고 밝혔다. AFP통신은 단속하던 공무원들이 깜짝 놀라 허둥댔으나 군중이 몰려들어 국왕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환호했다고 전했다. 압둘라국왕은 “파악한 애로사항을 참고해서 꼭 시정토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왕궁으로 돌아갔다.
올 2월 즉위한 압둘라국왕은 “국민의 소리에 항상 귀를 열어두라”는 부왕 후세인의 유지를 받들어 틈나는 대로 병원과 관청 등을 방문하고 있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