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소개하며 이탈리아의 한 영화잡지가 붙인 제목처럼,‘바다의 도시’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에서 배를 타고 일렁이는 물살을 가르며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 섬에 도착하면 스크린에는 ‘리비도의 물결’이 출렁인다.
하나의 주제로 단순화하긴 어렵지만 개막작 ‘아이즈 와이드 셧’부터 경쟁 비경쟁 부문 모두에 리비도가 강한 영화들이 어느 해보다 두드러진다.
경쟁부문 출품작 18편 중 7일까지 상영된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제인 캠피온 감독의 ‘홀리 스모크’. 구도를 위해 인도로 떠난 루스(케이트 윈슬렛 분)와 심리학자 PJ(하비 키이텔 분)가 벌이는 성적 유혹의 게임과 영적인 깨달음의 전개과정을 일치시킨 영화다.
상영 이전부터 화제가 됐던 경쟁부문 출품작 ‘포르노그라피 정사’(감독 프레데릭 폰테인)는 제목과는 달리 ‘점잖은’ 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성적 탐닉에 빠져든 두 주인공이 결국 사랑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다. 이밖에 특별상영 부문(비경쟁)의 ‘나를 봐’(감독 다비드 페라리오)는 포르노 여배우의 삶을 다뤘고, ‘현재의 영화’부문(비경쟁)의 ‘버디 보이’(감독 마크 핸런)는 이웃집 여인을 훔쳐보며 망상에 빠져드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올해 베니스에 유독 리비도가 강한 영화가 많은 까닭은 ‘늙어버린 베니스’를 바꿔보려는 실험의 결과이기도 하다.
베니스 영화제는 32년 무솔리니에 의해 창설된 세계 최고(最古)의 영화제. 칸 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영화제 중의 하나로 작가주의 감독들을 발굴해왔지만, 최근에는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토론토 영화제의 급속한 부상과 할리우드의 외면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알베르토 바르베라 집행위원장은 “낡은 영화제가 돼버린 베니스가 새 옷을 갈아 입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신을 위해 튀는 영화를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출품작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저조하다는 것이 현지 평론가들의 대체적인 의견. 11명의 평론가들이 영화에 점수를 매기는 일일 소식지 ‘필름TV투데이’에서 6명으로부터 10점 만점을 받은 ‘아이즈 와이드 셧’을 뛰어넘은 영화는 아직 없다.
〈베니스〓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