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들뢰즈 철학, 한국 철학계서 각광

  • 입력 1999년 9월 13일 18시 33분


21세기 한국철학의 좌표를 모색하고 있는 한국 철학계에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과연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서양철학사의 주류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등 변하지 않는 ‘실체’를 추구해 온 철학자들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1925∼95)는 스토아학파,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송 등 철학사의 ‘야당’으로 남아 있던 철학자들의 ‘사유’에 관심을 기울였다.

영원한 것을 찾으려는 열망으로부터 시작된 서구의 사유가 변방으로 밀어놓은 ‘사건’ ‘의미’를 탐구하려 한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본질주의에 반대하면서 이 세계가 불변적인 것도 아니고 무한히 생성하는 것도 아닌 어떤 고유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밝히려 했다.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그의 탐색은 상품과 욕망생산 이면의 근본적인 흐름에 집중돼 있다. 그는 국가 조직 등의 실체화된 사유로 접근하는 ‘정주민(定住民)적 사유’와 달리 실체화된 사유들을 넘나드는 ‘유목민(遊牧民)적 사유’로 접근한다. 욕망은 단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를 체제 개념이 아닌 욕망을 생산하는 코드의 개념으로 거부한다.

이런 점에서 세기말 한국 철학계는 들뢰즈에 대한 관심을 더해간다. 들뢰즈가 이처럼 우리에게 각광을 받는 이유는 서양철학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자본주의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

현재 국내에는 20여권에 달하는 관련 저작들이 출간돼 있다. 최근 이정우 전서강대교수가 들뢰즈 해설서인 ‘삶·죽음·운명’(거름)를 출간했고 ‘의미의 논리’(한길사) ‘차이와 반복’ ‘천개의 고원’ 등도 잇따라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삶·죽음·운명’은 올해 초에 발간된 이씨의 ‘시뮬라크르의 시대’에 이은 ‘의미의 논리’해설서이다. 이 책은 단순한 해설을 넘어선 불교나 도가사상과의 비교를 통해 실체보다 사건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들뢰즈와 동양사상 사이의 유사성을 찾고 있다.

금주말 나오게 되는 ‘의미의 논리’는 ‘차이와 반복’과 함께 들뢰즈 철학의 기반이 되는 저작이다. 이 두 책은 초기의 철학사연구로부터 ‘안티 오이디푸스’의 욕망, ‘천 개의 고원’의 유목민적 사유 등 후기의 다채로운 연구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한다.

들뢰즈는 이밖에 문예아카데미나 이화여대 특별강좌 등 제도권 밖에서 열리고 있는 강좌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