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 당국자는 15일 “페리보고서엔 한국의 관심사항인 남북기본합의서 이행과 이산가족 재회문제가 언급돼 있다”고 전했다. 이는 94년 10월 북―미간에 체결된 제네바합의가 “본 합의문이 대화를 촉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남북대화에 착수함”이라고 규정한 것에 비해 훨씬 구체성을 띠는 것.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 조정관이 남북관계 부분을 보고서에 포함시킨 것은 남북관계의 진전이 미국의 대북정책 추진에 필수적인 요인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반도문제의 당사자인 남과 북의 관계가 적대적인 관계에서 화해 협력을 지향하는 쪽으로 진전되지 않는 상태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대북관계를 개선해 나가기는 어려운 게 사실.
보고서의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에서의 냉전종식임은 물론이다.
페리 조정관은 또 남북관계 개선을 보고서에 분명히 언급함으로써 북한이 대미관계 개선만 추구하고 대남관계는 외면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미일은 그동안 페리보고서 작성을 위한 사전 협의과정에서 3국의 대북관계가 균형있게 추진돼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북한은 그동안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만 상대하겠다며 추구해온 ‘통미봉남(通美封南)’ 내지는 ‘선미후남(先美後南)’정책을 수정하도록 압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페리보고서가 권고하는 대북정책이 본격적인 실천단계에 접어들면 남북대화가 머지않아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당연히 북한이 한미일의 이같은 포괄적 대북접근에 호응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하다. 결국 공은 다시 북한쪽 코트로 넘어간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