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해빙무드(中)]美 전문가들의 시각

  • 입력 1999년 9월 19일 18시 40분


북한과 미국의 베를린 합의에 따라 북한이 미사일 발사실험을 유보하고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대북제재 해제를 발표함으로써 북―미관계는 새 국면을 맞았다. 53년 한국전 휴전 이후 46년만의 중대한 전기(轉機)다. 그동안 북―미 양측은 수교협상 가능성을 여러번 타진했으나 이번처럼 적극성을 띤 적은 없었다.

이같은 전기를 마련한 핵심인물은 미국의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 앞으로 북―미협상은 페리조정관이 그린 가상경로를 따라 진행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북―미수교를 목표로 하는 포괄적 협상을 ‘페리 프로세스’라고 부른다.

▼ 美행정부 성과 과잉선전 ▼

그러나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미국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은 성급한 기대를 경계했다. 일부는 북―미수교협상까지 5∼1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며 클린턴 행정부가 베를린 북―미합의를 과잉선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지 도쿄지국장 출신으로 지난해 ‘두개의 한국’이라는 저서를 낸 돈 오버도프 존스홉킨스대 객원연구원은 1년4개월의 임기밖에 남지 않은 클린턴행정부가 북―미수교협상을 완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교 예비협상은 클린턴행정부가, 본격협상은 차기 행정부가 맡을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그는 차기 정권을 공화당이 잡더라도 대북협상에 큰 단절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본적으로 북―미수교 정책은 클린턴행정부 이전 공화당 정권에서도 검토한 사안이기 때문. 북한의 입장에서도 대미수교는 오랜 숙원이었고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도 불가피하기 때문에 베를린 회담에서 페리 프로세스의 개시에 북한도 동의한 것으로 본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최대 관심사인 장거리 미사일 개발계획 포기에 호응할 수 있을 것인가.

▼압박카드 내세웠어야▼

미국 외교협회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원은 “페리조정관의 최대 실수는 한미일 3국 국방장관 회담의 정례화같은 강력한 대북 억지력의 과시를 첫번째 건의사항으로 내세우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압박과 협상을 병행해야지 협상만으로 양보를 이끌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당초 페리조정관도 대북 압박카드를 강조할 생각이 있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협상에 무게를 싣게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베를린 북―미회담을 ‘무(無)와 무의 교환(nothing for nothing)’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미사일 개발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발사실험 중지는 큰 의미가 없으며 대북제재도 그동안 북한에 경제난의 핑계만 제공했을 뿐 큰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진작 해제했어도 무방했다는 것. ‘보다 강한 채찍과 보다 맛있는 당근’을 강조하는 매닝연구원은 페리 프로세스가 ‘대타협(Grand Bargain)’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좌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탠퍼드대 부설 후버연구소의 토머스 헨릭슨 부소장은 “대북제재 해제는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이라면서도 “문제는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면 보상을 얻어낼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북한에 보내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베를린 회담을 통해 미사일 발사실험을 할지 모른다는 힌트만으로도 엄청난 보상을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北미사일에 지나친 공포▼

맨스필드 연구소 고든 플레이크 사무국장도 “그동안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에 대해 지나치게 공포에 질려있었다”며 “발사실험 중지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베를린 회담과 페리조정관의 대북 정책건의가 결정적인 돌파구는 아니더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라며 “지난해 금창리 지하핵의혹이 불거져 북―미관계가 악화되기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북―미협상에서는 미국 의회의 태도가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 이에 대해 이들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모든 현안이 정치적 이슈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의회의 협조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매닝) “그렇다고 의회가 북―미협상을 가로막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할 것”(오버도프) “앞으로 지켜봐야겠다”(플레이크)는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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