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되고 지적인 용모를 갖춘 라이사여사는 소련 공산사회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을 통해 격변할 시기 서방세계에 소련의 변모를 상징했던 인물이었다.
남편이 권력의 정상에 이르기까지 공산관료조직의 병폐를 뼈저리게 느낀 그녀는 개혁개방정책을 누구보다 강력하게 지지했다.
아내가 병상에 눕자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7월25일 이후 병상을 지켜왔으며 병이 나으면 바다가 보이는 작은 집에서 여생을 함께 하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라이사는 결혼 46주년 기념일을 닷새 앞두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51년 모스크바 법대생 시절 철학부에 다니던 라이사에게 반해 재학중이던 53년 결혼했다. 라이사는 철학부를 수석졸업했으며 대학원을 거쳐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85년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서기장이 되자 대학을 떠났으며 각종 국내외 공익단체 등에서 일하며 집필활동도 했다. 91년 고르바초프 실각 후 백혈병 증상이 나타나 투병을 하면서도 97년 ‘라이사 막시모브나 클럽’을 결성하는 등 여권신장을 위해 일해왔다.
화사하고감각적인 이미지는 영부인시절 소련 사회에서 비난과질시의대상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그녀가 뮌스터대병원에 입원한 후 이런 기사를 실었다.
‘우리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인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그녀의 비애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다정했던 고르바초프부부를 향한 존경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라이사는 병상에서 이 기사를 읽으며 울었다고 한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