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는 요즘도 한국과의 인적 물적 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 한국과 관련있는 행사와 모임이 많기로는 세계에서 규슈를 당할 고장이 없을 것이다. 규슈의 미야자키현에서는 지난 10년간 1000여명이 식목일 전후에 한국을 방문해 ‘나무처럼 가꾸는 대로 자라고 여물 한일 양국의 밝은 내일을 위해’ 나무심기를 계속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규슈의 관광지에는 으레 한국어 안내 책자가 마련돼 있고 우리말이 병기돼 있는 도로 표지도 드물지 않다.
규슈의 중심지인 후쿠오카에서는 달리는 택시 안에서 KBS 방송을 들을 수 있다. 쾌속선 비틀호를 타면 불과 3시간 만에 부산에 닿는다. 당일치기로 부산 나들이를 하고 해운대에서 주말 회식을 하는 일본인들도 늘고 있다. 일한친선협회 한우회 나들이회 후쿠오카서울회 무궁화회 현해인클럽 등 민간교류에 앞장서는 친목단체가 하늘의 별만큼은 아니라도 아주 많다. 후쿠오카에서 본 한일 관계는 그야말로 ‘가깝고도 가까운 관계’이다. 한일 우호친선의 센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렇게 많은 친선단체 중에서도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은 유독 눈길을 끈다. 94년 11월 한국에서 10여년간 한국문학을 연구하고 귀국한 니시오카 겐지 교수가 회원 3명과 함께 시작한 이 모임은 현재 회원이 40명 가까이로 늘어났다. 대학교수 신문기자 시인 학생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회원들이 매달 한번씩 모여 윤동주 시의 의미를 깊게 파고든다.
발표자로 지정된 두 사람이 똑같은 시를 읽고 자기 나름의 감상과 해석을 발표하면 다른 회원들이 코멘트를 하고 니시오카 교수가 마무리 평석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일본어 번역본을 기본 교재로 사용하고 있으나 한국어 원본을 참고함은 물론 때로는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영역도 해본다.
윤동주는 조국의 광복을 반년 앞둔 45년 2월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서른도 안된 젊은 나이에 바람처럼 스러져 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불과 400여m 떨어져 있던 그 형무소에서 해맑은 영혼의 시인이 일 년 가까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니시오카 교수는 윤동주 시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5년 동안의 회원들 토론 기록이 책 한권의 분량을 넘어 기회가 오면 이를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해마다 윤동주의 기일인 2월16일에는 회원들이 형무소의 옛 터에 모여 조촐한 위령제를 지낸다. 서울을 방문해 추모제를 지낸 적도 있다.
얼마전 총영사관 관저에서 마흔한번째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이 열렸다. 조총련 출신의 한 여자 대학원생은 생전 처음 한국 공관을 찾은 탓인지 긴장된 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더니 끝날 무렵에야 “고맙습니다”고 예의를 차렸다. 참석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일본인들 중에도 윤동주 시에 공감하고 너무나 짧았던 그의 삶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반추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윤동주 시와 그의 정신이 그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작은 모임을 통해 후쿠오카에서 규슈로, 그리고 일본 전체로 퍼져 나가기를 꿈꿔본다.